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석유 소비와 관련세금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도 높다고 아우성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현재는 60달러 아래로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소비자들이 느끼는 석유제품 가격 체증지수는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가격 상승과 상관없이 석유제품에 따라 일정비율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원유가격이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세금 부과액 또한 증가해 소비자 부담이 산술급수적 이상으로 증가하고,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증지수는 기하급수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이다. 물론, 소비자들이 현명해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 석유제품 소비를 자제함으로써 시장의 수급에 따라 가격상승을 제한하면 그만이겠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비쌀수록 더 선호하는 사치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격이 오르든 아니든 상관없이 소비하는 과소비와 낭비벽이 이미 몸에 밴 상태여서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원칙이 작용할 소지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가격을 낮추면 소비가 줄어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석유제품 관련세금을 낮출 수 없다고 버티고 있고, 대다수의 언론들은 과소비 체질을 나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세금을 낮추라고 연일 떠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유와 같은 에너지 소비는 가격 탄력도가 상당해 가격이 급등하면 소비가 일정수준 줄어들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일정수준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단적으로 미국에서는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소비가 상승률의 20-30% 비율만큼 증가하고 반대로 급락하면 하락률의 20-30% 비율만큼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드라이빙 시즌이 되면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고 드라이빙 시즌이 종료되면 하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가격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어서 가격탄력도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승률이나 하락률의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수요가 움직이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가 생활에 필수적인 냉난방용으로 사용되고 땅덩어리가 넓어서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생활구조적 한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민소득이 미국의 1/3 수준인 우리나라는 더욱더 가격탄력성이 없다고 한다. 국민소득이 높지 않아 냉난방 및 운송용 소비가 탄력성을 가지고 움직일 것 같지만 워낙 소비성향이 높다보니 국제유가나 생활물가가 올라도 소비가 끄떡하지 않는 특징이 있고, 에너지 소비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부문이 단기적으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연구원(KIET)이 2003년 외부 연구용역에 따라 분석한 <자동차연료의 적정가격 비율연구> 보고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국내 휘발유의 단기수요 탄성치가 0.167-0.209, 경유는 0.240-0.244에 불과하다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된다. KIET는 장기수요 탄력성도 휘발유가 0.061-0.079, 경유는 0.079-0.093으로 더욱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원리에 따라 석유제품 가격이 높아야 소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논리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세수를 우려해 세금을 낮춰 석유제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세금이 2000년 15조8000억원, 2002년 16조8000억원, 2004년 21조4000억원으로 급증했고 2006년에는 25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부정적이다. 더군다나 자동차 소유가 일반화돼 있는 현실에서 보면 간접세인 석유제품 관련세금을 많이 거둬 사회복지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것도 형평성이나 이치에 맞지 않다. 결론적으로 석유제품 관련세금을 조정하는 문제는 늘어나는 복지예산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와 함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할 것인가로 요약되지 않나 생각된다. 석유세금 정책은 정부조직과 복지수준, 그리고 산업계를 아우르는 소비감축정책을 추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화학저널 2007/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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