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을 비롯해 국내 화학산업 전체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관계자는 없을 것이다. 화학산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석유화학은 중동의 신증설 광풍에 추풍낙엽 신세이고, 정밀화학은 유럽·일본의 고부가 기술과 중국·인디아의 저코스트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전락해 사양산업화가 기정사실로 정착했으며, 무기화학은 이미 생산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희토금속을 위주로 원료 코스트가 폭등해 회생할 기력조차 잃었고, 제약을 중심으로 하는 특수화학도 신약 개발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료 및 중간체 생산이 미미해 소분과 물장사 수준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지탱하고 있는 전자 및 반도체 소재가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고 있으나 원료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어 부가가치가 낮기는 마찬가지이다. 석유화학은 정밀화학, 무기화학, 특수화학이 경쟁력을 잃고 사양화돼가는 와중에서도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했고 지난 3-4년 동안에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수요가 급신장하면서 호황을 누렸으나 2008년 들어서면서 고전이 차츰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이 합성수지를 비롯한 석유화학제품의 자급률을 급격히 높여 수입을 축소하고 있는 상태에서 중동 국가들이 코스트가 낮은 에탄을 바탕으로 신증설물량을 대량 쏟아내고 있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신증설 플랜트의 가동을 시작한 이란이 에틸렌 및 LDPE 수출에 나서자마자 아시아 가격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사우디와 UAE, 오만, 쿠웨이트가 본격적으로 가세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들이닥칠 것인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중동의 석유화학 신증설 광풍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작돼 2005-06년 가동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건설 코스트 폭등과 인프라 구축 미비 및 전문인력 부족으로 2-3년 지연돼 2008년부터 아시아 수출을 시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중동의 신증설 플랜트가 가동을 본격화하는 2008년 하반기 이후로 에틸렌 기준 2000만톤이 넘는 거대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세계 석유화학 시장 전체가 질곡으로 떨어지고 경쟁력이 취약한 아시아 석유화학기업들은 상당부분이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은 자명하나 유럽은 이미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수입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코스트 타격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운 입장이고, 미국은 경기침체로 수요까지 줄어들어 일정부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자체 수요가 거대하고 자생력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그리 걱정스러운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는 에너지 및 원료 코스트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수출수요까지 줄어들 것이 분명해 진퇴양난의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에 중동의 저코스트 석유화학제품이 몰려들게 되면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가동률을 낮추는데 그치지 않고 일부에서는 플랜트를 폐쇄해야 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도 마찬가지로 일부에서 고정코스트를 낮추고 마케팅 파워를 키우기 위해 증설을 완료했거나 완공국면에 접어들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코스트 경쟁력을 확보하지는 못해 2009-12년에는 적자경영이 불가피하고 시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석유화학기업이 상당수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를 비롯한 정부부처들은 원료 수입관세만 낮추어주면 끝인 양 복지부동하고 있고, MB가 현장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탁상행정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경기가 죽어도 개발도상국 수요가 살아나고 있고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있으니 적정할 것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2010-12년에 가서는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다 죽어가게 됐다면서 1993-94년처럼 합성수지 카르텔을 묵인하며 방조하는데 그치고 않고 선동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지식경제부가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화학저널 2008/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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