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단청이 복구된 지 5개월 만에 박락됐다. 천연안료를 채용하지 않았다, 선명한 색감을 위해 호분을 덧칠했다, 국산 아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등 수많은 지적이 제기됐으나 어느 하나만의 문제로 몰아가기에는 천연안료 채용과정에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안료는 애초 사용하려던 천연석채 대신 인공수간채를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국산 아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문화재청과 단청장을 질타했으나 회화용 아교는 원래부터 중국이나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 복원 관련 전문가들은 “안료만의 문제도 아니고 아교나 호분만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어떤 재료를 쓰더라도 재료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나 정보도 없이 사용한 것과 아교나 호분을 사용할 때에는 정교함이 요구되는데 전통회화 전문가와 원활한 협조관계를 맺지 못한 것 등 공개적이지 않은 일처리가 숭례문 참사를 다시 야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숭례문 복구비용 270억원 가운데 재료 구입비가 단 16억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화학안료, 천연안료 대체했으나… 천연안료는 광물 등 자연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만들며 원료가 유한하고 안료를 만드는 공정이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화학안료가 개발된 이후 천연안료에서 화학안료로 급속하게 대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천연안료는 급속한 산업화 및 도시화, 전통문화에 대한 무관심, 경제적인 이유로 생산이 중단되기에 이르렀고 천연안료를 채용해야 하는 주요 사찰이나 목조 건축물의 단청이나 전통회화 복원 등에도 대부분 화학안료가 사용되고 있다. 천연유기안료는 원료인 연지충, 합환목충 등이 국내에 자생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하지만 광물을 사용하는 천연무기안료는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의궤나 실록에도 완제품 수입에 대해서만 거론되고 있고 원석을 가져와 가공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전통 제작방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시장 관계자는 “국내에는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없어 정밀한 입도구분 기술이 비교적 적게 전파됐다”며 “장기산의 노록이나 울릉도의 석간주 등을 기초안료로 사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나름대로 가공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 구체적인 제작방식이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다만, 물의 비중에 의해 연마된 암석의 입자를 ㎛ 단위로 구분하는 수비법이 일반적으로 전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가일전통안료가 단청을 기준으로 12가지 색상의 천연석채를 생산하고 있으며, 원석을 수입해 연마하고 잡석을 골라내 3-150㎛의 입자를 크기에 따라 10단계 이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가일전통안료 김현승 대표는 “천연석채를 국산화하기 이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으며 원재료인 원석의 유입이나 제조기술 개발 과정에서 외국기업과 많이 협력했다”고 밝혔다. 천연석채를 만들 때 청색안료를 만들 수 있는 아주라이트(Azurite), 녹색안료의 원료 말라카이트(Malachite) 등 원석을 가공하는 기술은 서양보다 동양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자를 섬세하게 하면서도 입자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으로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에서 수입하는 천연석채보다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유럽에서 수입하는 천연석채는 곧바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질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능숙한 접착제 사용이 관건으로 작용 천연안료 생산기업들은 천연석채를 개발했음에도 예술가들이 채용하는 양이 적어 생산을 지속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회화는 예전에 사용하던 색채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나 전통 화가들이 사용하는 안료의 양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는 “현대회화에서는 인공안료의 과감한 색채를 선택하고 있어 천연석채를 사용하는 작가가 적기 때문에 천연안료가 사용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한정적”이라고 밝혔다. 전통회화는 보존과 작품의 영구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석채와 교착제의 사용요령이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교착제로 사용되는 아교는 종류가 토끼아교, 소아교 등 동물아교와 물고기의 아가미 등에서 얻는 어교 등이 있다. 아교는 가죽이나 뼈에서 얻을 수 있으며, 가죽은 석회수에 담가 열수추출하고 용액을 농축해 냉각하는 것과 뼈를 유기용제로 탈지하고 열수추출하는 방법 등 2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고체상태의 아교는 황갈색을 띄며 가열해 겔(Gel) 상태에서 강력한 교착제로 사용할 수 있다. 아크릴 물감이나 유화 물감 등은 교착제가 안료에 배합이 된 것으로 교착제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으나, 천연안료는 가루 상태의 안료를 가열하거나 물에 갠 아교와 잘 배합해 사용해야 한다. 특히, 천연안료는 채도가 다르면 거칠기가 다르게 되며 입자 크기가 150㎛ 이상이면 교착제가 안료를 이겨내지 못해 칠이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입자의 크기를 잘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학안료는 교착제가 배합이 된 형태로 유통되고 있으며 교착제로는 아크릴(Acryl) 에멀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는 “아크릴에멀전을 채용한 화학안료를 단청 등 문화재 복원에 사용하면 물감에 포함된 아크릴에멀전이 나무의 기공을 다 막아버리게 돼 부식이 쉽게 된다”며 “아교는 수용성이기 때문에 나무가 숨을 쉴 수 있게 해 문화재 등의 보전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또 아크릴에멀전을 사용한 화학안료는 천연안료의 색감에 크게 미치지 못해 문화재를 복원에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1970년대에 화학안료가 공식 안료로 채택되면서 문화재 복원 등에도 당연하게 채용되고 있다”며 “천연안료 생산이 중단되면서 고벽화 등의 전통회화작품을 보수·유지할 때 화학안료를 사용해 색감을 모두 망쳐놓았고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숭례문 문제가 대두되면서 천연석채, 천연교착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고 일부 복원가와 복원기업들이 천연석채 채용을 적극화하고 있다. 문화재를 유지·보수하기 위해서는 천연안료의 계승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천연안료 생산기업들이 사업성을 갖추는 것도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시장 전문가는 “1년에 몇 차례라도 문화재에 국산 천연안료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지면 천연안료 생산기업들의 전통이 단절되지 않을 것”이라며 “더불어 천연수간채, 천연석채와 함께 사용되는 교착제인 아교나 조개껍질을 빻아서 생산한 백색안료인 호분을 능숙하게 잘 다룰 줄 아는 전문가의 맥을 잇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일전통안료 관계자는 “천연안료는 전통회화 장르 이외에서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통회화에서 필요한 색상 위주로 개발되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회화용 수요로는 경영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원료를 국산화하기 위해 국산 원석을 채취한 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기술로 5가지 종류의 천연안료 개발에 성공했으나 경제적 부담 때문에 당분간 더 이상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숭례문, 문화재청 탓만 할 수 있나… 숭례문이 복구완료 5개월 만에 훼손되고 있다. 단청의 칠이 벗겨지고 기둥은 손바닥이 통과할 정도로 심하게 갈라졌으며 기와도 규격과 다르게 제작하면 번거롭다며 KS규격의 기와를 채택하면서 기와의 크기도 달라진 총체적 부실공사로 평가되고 있다. 5월16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단청공사를 진행할 때 전통방식대로 아교를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시공과정에서 아교가 흘러내리고 색이 흐릿해지자 화학접착제와 화학안료를 현장에 몰래 반입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화학접착제와 화학안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단청이 박락된 것이라는 설명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의 목조건축물이나 문화재 복구에 화학안료가 지속적으로 채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의 단청이 5개월 만에 칠이 박락된 것은 그 동안 화학안료를 채용한 문화재에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을 은폐해온 것이거나 국보 1호인 숭례문에 품질이 더 좋지 못한 재료를 사용했다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숭례문 복원에는 가일전통안료가 안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했다”며 “처음에는 천연석채를 적용하기로 했으나 인공수간채로 교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일전통안료는 안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가일전통안료 관계자는 “고가인 천연석채를 채용했다면 이윤도 높아졌겠지만 인공수간채를 채용했건 천연석채를 채용했건 가장 큰 문제는 아교를 다룰 줄 몰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루형태인 수간채는 아교와 적절히 배합해 사용해야 하나 우리나라에는 아교를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문화재청 등 숭례문 복원 관계자들이 아교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복원을 강행했기 때문이라며 “같은 방법으로 아교를 배합했다면 비싼 천연석채가 박락됐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공수간채를 채용한 것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아교를 섬세하게 다룰 줄 아는 전통회화 작가들과의 협조를 통해 천연안료 생산을 지속하고 더불어 아교를 사용하는 기술도 맥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다만, 천연안료를 사용하고 아교 사용방법을 지속적으로 계승하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가 요구되고 있다. 처음 숭례문 단청이 박락됐다는 소식에 언론과 국민들은 왜 국산 재료를 채용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으나 문화재청이 천연안료를 복원하고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예산을 요청했음에도 번번이 배정받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교도 고품질의 국산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한 저가제품을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했다며 논란이 일었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고품질의 아교는 알약의 캡슐 등을 만들 때 사용되는 식용 아교로 안료에 배합되는 아교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는 “아교는 일본과 중국 등에서 수입해 사용해야 한다”며 “공장을 세우려고 해도 동물의 가죽이나 뼈, 생선 등을 원료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악취가 심해 지역주민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산 아교가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2가지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시장이 너무 작아 생산기업들이 외면했을 가능성과 둘째로는 회화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저급제품일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식용 아교는 젤라틴이라고도 불리며, 고도의 정제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연안료와 아교는 함께 채용되기 때문에 하나만을 국산화해서는 전통안료 기술을 온전히 복원했다고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어 함께 복원 및 계승해야 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전통안료기술, 문화재청의 복원 계획은… 문화재청은 문화재 훼손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통안료기술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통안료 기술 복원에는 최소 5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3년 11월 전통안료기술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2014년 5월까지 복원할 전통안료의 기준을 단청안료에 한정할 것인지, 전체 천연안료를 복구할 것인지 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담당자들이 경질됐고 인사이동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섣불리 복원계획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2013년에는 조선시대 안료 산지였던 포항의 뇌성산 광물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안료로 채용할 수 있는지 실험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산 안료와 아교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방침이다. 일부 전문가는 “천연재료가 한정돼 있고 옛날 방식의 원료를 모두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며 안료를 전통방식대로 생산할 수 있는 장인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옛것을 그대로 고집하기 보다는 외국산을 접목하거나 현대과학을 응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정은 기자: bje@chemlocus.com>
<화학저널 2014년 9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