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자동차(EV)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차전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동박(전지박)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세계 4위 동박 생산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가 매물로 나오면서 롯데, LG를 중심으로 대기업은 물론 대형 사모펀드(PEF)까지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동박 수요는 2021년 26만5000톤에서 2025년 74만8000톤으로 연평균 40%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박 시장은 2018년 1조원을 약간 상회했으나 2025년에는 14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스마트폰에는 동박이 대당 5g 들어가는 반면 전기자동차는 대당 30-40kg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박은 머리카락 두께 15분의 1 정도의 얇은 구리막으로 전자·전기제품의 핵심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에 주로 투입됐으나 최근 2차전지용 동박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시장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동박은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 일본 후루카와(Furukawa), 닛폰 덴카이(Nippon Denkai)가 세계시장을 장악했으나 중국기업들이 저품질 동박을 대량 생산하고 한국기업들이 고품질 동박에 집중하면서 주도권이 넘어왔고 2021년 기준 SK넥실리스, 중국 왓슨(Watson), 타이완 창춘(Changchun), 일진머티리얼즈 4사가 시장의 72%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높고 눈치경쟁 치열
최근 일진그룹이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 매각에 나서면서 롯데, LG, SK, 포스코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매각액이 3조원 안팎으로 예상보다 높다는 의견에도 8월 본입찰을 앞두고 롯데케미칼, LG화학, 포스코 등이 투자안내문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배터리 소재 분야에 4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어서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히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 2차전지 4대 소재 사업에 모두 진출할 계획이며, 동박 사업을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이 국내 3위 동박 생산기업 솔루스첨단소재에 2900억원을 투자했으나 최근 1조2000억원의 PI첨단소재 인수전에서 물러나면서 투자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LG화학도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인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분사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차원에서 동박을 신사업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LG화학은 양극재, 분리막, CNT(Carbon Nano Tube) 등 소재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 절반가량이 LG에너지솔루션의 경쟁기업인 삼성SDI 납품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인수 결정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SK그룹도 인수에 관심을 표명했으나 SKC가 동박 1위인 SK넥실리스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어 독과점 우려 때문에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도 2019년 KCFT(SK넥실리스)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코스모그룹이 양극재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GS의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나 GS그룹은 부인하고 있다.
SKC, PET필름 사업 매각하며 동박 집중
SKC는 모태사업까지 매각을 추진하면서 동박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SKC는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K넥실리스를 앞세워 전기자동차에 투입되는 2차전지 음극소재인 동박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힐 계획이다.
SNE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SK넥실리스는 2021년 상반기 기준 글로벌 동박 시장 점유율 22%로 중국 왓슨 19%, 타이완 장춘 18%에 앞서 있으나 격차를 더욱 벌리기 위해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SKC는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필름이 포함된 인더스트리 소재 사업부를 한앤컴퍼니에게 매각하기로 결정했으며 매각금액이 약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C 관계자는 “2차전지·반도체·친환경 소재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솔루션과 결이 맞지 않는 필름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더스트리 소재 사업을 매각하면서 생분해성 소재 PBAT(Polybutylene Adipate-co-Terephthalate) 사업을 남겨둔 것 역시 ESG 경영 기조에 기반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SKC가 PET필름 사업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동박 사업에 투자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SKC는 2차전지 소재 사업 매출액이 2022년 1분기 212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9.6% 급증했고 영업이익도 245억원으로 46.7%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률도 11.5%로 인더스트리 소재 사업 8.3%에 비해 높아 수익성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SKC는 정읍 1-6 공장에서 동박 5만2000톤 설비를 가동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국내·외 생산기지의 총 생산능력을 25만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말레이지아 공장은 2021년 7월 착공해 2023년 상반기 완공하고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폴란드 공장 역시 2022년 2분기 착공해 2024년 4분기에 양산에 들어갈 방침이다. 미국에서도 동박 생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조지아 부지를 물색한 후 인센티브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넥실리스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파나소닉(Panasonic), CATL 등 글로벌 배터리 메이저 매출 비중이 90%에 달하고 수요기업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배터리 증설이 활발해 수요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2021년 6공장 완공으로 공급을 시작했다”며 “말레이산 동박은 가격경쟁력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솔루스첨단소재, 유럽‧캐나다에서 동박 증설
솔루스첨단소재 역시 공격적으로 동박 생산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다.
현재 룩셈부르크에서 5G 및 반도체용 동박 1만2000톤과 헝가리에서 전기자동차용 동박 3000톤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헝가리와 캐나다에서 동박 생산능력을 2026년 11만7000톤까지 확장하고 룩셈부르크의 5G·반도체용 동박 3000톤을 증설해 총 13만2000톤 생산체제를 확보할 계획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배터리 생산기업을 거치지 않고 테슬라(Tesla)에게 직접 동박을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자체 생산하는 차세대 배터리에 솔루스첨단소재 동박 70%를 사용하고 30%는 자체 생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솔루스첨단소재는 주요 생산설비가 유럽에 있어 당분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력 코스트 상승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지정학적 문제로 인한 에너지비용,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차질, 생산시설 본격 가동에 따른 고정비 증가로 2022년 1분기 매출이 1236억원으로 39.2%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24억원을 기록했다.
일진머티리얼즈, 투자금 1조1500억원 회수 가능성
경쟁기업들이 동박 증설 투자로 사업을 확대하는 가운데 일진머티리얼즈는 경영권 매각을 추진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21년 상반기 기준 글로벌 동박 시장 점유율이 13%로 SK넥실리스, 왓슨, 창춘을 추격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외부 투자자를 통해 1조1500억원을 확보했고 2025년 말레이지아와 유럽, 미국 등에 총 14만톤 생산설비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경영권 매각으로 돌변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투자과정에서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위험방지 조항을 마련하지 못해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이 매각되면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새 주주와 협력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스틱인베스트먼트로서는 투자전략을 재고할 수밖에 없고 투자금을 회수하면 일진머티리얼즈의 동박 증설 계획 역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시가총액 기준 대주주 지분 가치는 2조원,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지면 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매각이 원활하게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높은 인수가격과 수요처 구조 등을 이유로 LG화학, 삼성SDI, 롯데케미칼 등 대기업들이 선뜻 인수에 나서지 못하고 있으며 포스코는 인수 검토조차 부인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 역시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등 초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국한해 투자안내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머티리얼즈 매각 추진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관계자들은 경쟁기업들의 대규모 증설 투자에 허재명 대표이사가 부담을 느꼈고, 배터리 관련사업 가치가 높을 때 매각함으로써 현금 확보에 나서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동박, LFP배터리에 많이 투입
동박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에 나서면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LFP 배터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보다 동박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SK온은 2022년 LFP 배터리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 아래 에너지 밀도와 급속충전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끝내고 시장 상황에 따라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설 방침이고, LG에너지솔루션도 LFP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기자동차 배터리보다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생산기업들은 삼원계로 불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중심으로 생산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NCM보다 주행거리는 짧지만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아 단가가 낮고 중국기업들이 LFP 배터리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자 국내기업들도 개발을 적극화하고 있다.
미국 전기자동차 메이저 테슬라는 2022년 1분기에 생산한 전기자동차 가운데 50%가량에 LFP 배터리를 탑재했고 폭스바겐, BMW 등도 중저가 전기자동차 모델에 LFP 배터리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홍인택 기자: hit@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