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재편을 위해 석유화학기업들의 철저한 자구 노력과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금융당국은 석유화학산업 재편을 위한 금융 지원 3대 요건으로 철저한 자구 노력, 고통 분담, 신속한 실행을 제시했다. 시장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에틸렌 생산능력 감축을 비롯한 구조재편에 앞서 정책적·금융적 지원을 먼저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거절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대산·여수·울산단지가 동시에 사업재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연말까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모든 지원까지 중단함은 물론 채권단이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회도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다. 전기요금 감면과 자가소비용 천연가스 직수입 특례는 빠졌으나 석유화학기업의 합병 및 사업재편에 필요한 재정·금융 지원 근거를 마련했고, 산업통상부가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을 통해 정책자금 지원, 지급보증과 관련한 조세 지원의 적용 기준 및 요건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산업부나 국회, 금융당국의 일련의 조치는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재편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경쟁력 강화라는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된다. 석유화학 사업재편은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통폐합이나 생산능력 감축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대산단지의 구조조정안을 확정하고 정부에 승인 심사를 신청했으나 역시 어떻게 경쟁력을 강화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이 대산 컴플렉스를 물적으로 분할한 후 HD현대케미칼과 50대50 비율로 합병함으로써 에틸렌 생산능력 110만톤을 감축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나, 에틸렌 생산능력 감축이 곧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에틸렌 생산능력을 감축함으로써 에틸렌 수출 부담을 줄여 유연하게 대처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에틸렌 생산능력 감축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도 특혜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이고, 전체적으로 코스트를 얼마나 줄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가 없다.
여수단지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통합을 논의하고 있으나 GS칼텍스가 미온적이고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힘겨루기가 심해 구체적 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울산단지도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이 논하고 있으나 대한유화는 인수할 여력이 없고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때문에 통폐합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생산능력 감축에 매몰돼 경쟁력 강화라는 근본적 구조조정 취지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이 대산단지에서 100만톤, 여수단지에서 150만톤 정도 감축할 것을 제시했다고 생산능력 감축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산능력 감축에 따른 비용을 어떠한 방법으로 부담할 것인지, 생산능력 감축에 따라 줄어드는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나프타·천연가스 등 원료 수입비용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합성수지·합섬원료 생산능력은 어떻게 조정하고 수출을 무슨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등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일본이 통폐합을 통해 생산능력 감축에 주력했다고 한국도 그렇게 하라는 법칙은 없다. 일본이 자체 생산능력을 줄이는 대신 중동·동남아 투자로 돌파구를 마련했듯이 정부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지 생산능력 감축이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