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을 결정했다.
2023년 4월 말 유럽의회에 이어 EU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유럽이사회가 정식으로 승인함에 따라 앞으로 수입제품에도 유럽 역내 생산기업에게 부과하는 것과 동일하게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세금을 부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6년 철강, 비료, 알루미늄, 시멘트, 전력, 수소 등에 적용을 시작하며 화학산업에도 조만간 적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CBAM, 6개 품목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화
EU는 배출권 거래제도(ETS)를 통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ETS는 대상기업 혹은 사업장별로 온실가스 배출량 상한을 정하고 정부가 탄소배출권을 발행해 무상 혹은 유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배출권 거래가 가능하며 배출권보다 실제 배출량이 적었다면 잉여 배출권을 판매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초과 배출했을 때는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배출량 감축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부과하면 대상 산업이 부담이 적은 역외로 이전하는 탄소 리케이지(Leakage)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역외 이
전이 우려되는 사업자나 시설에는 배출권을 무상 할당해 부담을 줄여왔으나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55% 감축을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 대응 법안 패키지의 일환으로 2021년 7월14일 탄소 리케이지 문제 해결을 위해 CBAM을 제안했다.
EU가 역내 환경규제를 강화할수록 규제 수준이 낮은 지역으로 생산설비가 이전되거나 저탄소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로 생산원가가 상승해 역외 국가 대비 불공정한 상황에 노출된다는 문제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며, 무상 할당과 정반대의 조치로 수입제품에도 역내와 동일한 부담을 부과함으로써 수입제품에 대한 역내 생산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말까지 CBAM 이행기간에는 EU에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분야 대상제품을 수출하는 대상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내재된 탄소 배출량 1톤당 CBAM 인증서 1개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하며 전환기간인 2023년 10월-2025년 12월에는 분기별 보고서 제출 의무만 부여하고 2026년 1월부터 CBAM 인증서 구입 및 제출을 요구할 예정이다.
배출 범위는 최종제품에 내재된 직접 또는 직‧간접 실질 탄소 배출량으로 철강, 알루미늄, 수소는 직접 배출만 적용 대상이나 시멘트, 전력, 비료와 철강 중 특정 전구체는 사용된 전력에 내재된 간접 배출도 포함한다.
또 이행기간 종료 후에는 실제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탄소국경세는 대상제품 수출기업이 보고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바탕으로 동일제품을 EU에서 생산했을 때 발생할 부담액에서 수출기업이 자국에서 이미 지불한 부담액을 뺀 금액을 징수한다.
수입 신고자의 승인, 탄소 배출량 검증, 기지불 탄소 가격 계산 등 세부준칙은 2023년 3분기부터 2025년 2분기 사이 단계적으로 채택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탄소 리케이지 억제를 위해 시행했던 배출권 무상 할당 조치는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다.
K-ETS 배출량 산정 불리 “우려”
정부는 EU의 탄소국경세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2023년 10월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2차 신통상 라운드 테이블을 열고 글로벌 기후·에너지 환경 변화와 관련한 통상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산업연구원 임소영 실장은 “글로벌 녹색 규제는 기후변화 및 탄소중립과 순환경제를 중심으로 강화될 것”이라며 “수요 측면에서 정책 수단을 적극 발굴·개발하고 정책 간 연계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광장 김윤승 변호사는 “한국 자체 배출권 거래제(K-ETS) 대상기업은 EU-ETS와의 차이로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수출과 국내 경제에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위협 요인에 선제 대응하고 기회 요인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전문가 의견을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CBAM 시행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EU에 보고해야 하는 국내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0월5일 EU CBAM 도움창구를 열었으며 2023년 말까지 CBAM 대상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법 해설서를 제작·보급하고 교육 및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EU 수출액이 681억달러에 달했으며 CBAM 대상 품목 수출액은 51억달러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다만, EU는 현재 CBAM 대상인 6대 품목 외에 유기화학제품, 플래스틱 등을 추가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무역협회 이정아 수석연구원은 “2025년부터 한국식으로 산정한 탄소 내재 배출량이 허용되지 않을 예정이어서 국내기업에 불리한 산정 기준이 적용되지 않도록 내재 배출량에 대한 측정·관리체계를 구축해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국내기업들은 주요국 탄소 규제 강화에 따라 미래에는 저탄소 배출제품 위주로 공급망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장기적인 탄소경영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U, CBAM 활용 이노베이션 기금 마련
EU는 수입제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고 무상 할당했던 배출권을 유상 할당으로 전환함으로써 상당 자금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U는 배출권에서 얻은 수익으로 이노베이션 기금을 조성하고 혁신적인 저탄소 기술 상용화를 위한 실증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이노베이션 기금은 그동안 그린수소 생산, 폐플래스틱 CR(Chemical Recycle), 이산화탄소(CO2) 포집·저장(CCS), 지열발전, 수소를 이용한 철강 생산 프로젝트 등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출권 4억5000만톤에서 얻은 수익을 기금에 투입한 것으로, 탄소 가격과 함께 일부 변동될 가능성이 있으나 2020-2030년 약 380억유로 상당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CBAM 도입 후에는 기금에 투입될 배출권 수익이 5억7000만톤 분량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U는 CBAM과 함께 사회기후기금도 신설할 예정이다.
화석연료 탈피 트렌드와 함께 도로 수송 및 난방용 연료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가정, 영세기업의 일시적인 소득 보조에 사용하고 탈탄소화를 위한 건물 개조, 탄소 제로 및 저배출 자동차 구입 비용 등을 지원한다.
CBAM이 도입되는 2026년부터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금은 배출권 5000톤분(약 40억유로)부터 시작해 2027년 예정된 ETS의 도로 수송 및 건물 적용 후에는 최대 650억유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화학산업, 탄소 리케이지 우려 확대
EU는 2030년까지 모든 ETS 대상제품에 CBAM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가 이행기간이 종료되는 2025
년 말까지 CBAM 적용 범위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다.
화학산업은 ETS 대상 업종이며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고 있다.
유기화학제품은 당초 CBAM 도입 초기에 대상으로 추가하기로 했으나 밸류체인이 복잡하고 원료 상황을 반영해 명확한 배출량을 산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앞으로 적용 확대를 촉구하는 조문에서 탄소 리케이지 우려가 있는 상품의 예시로 유기화학물질 및 폴리머가 기재돼 대상 지정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럽 화학기업들은 CBAM 적용 대상에 화학산업이 포함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 화학공업연맹(CEFIC)은 2022년 1월 성명을 발표하고 수출에 미칠 악영향을 언급한 바 있다.
EU는 역내 화학산업 전체에서 수출이 매출액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CBAM은 수입제품에 대한 경쟁력 저하를 막는데 도움이 되지만 수출제품에는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새로 발생할 배출권 수익 4750만톤분을 수출 타격에 따른 탄소 리케이지 대책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가별‧품목별로 타격 양상 “제각각”
CBAM 도입은 EU 수출기업에게 탄소 배출량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U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제3자 검증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검증이 불가능할 때는 수출국 평균치로 대용할 방침이다.
또 수출국이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 EU 역내에서 동일제품을 생산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설비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수출기업은 EU에 수출하기 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에 부과된 부담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으나 EU가 원하는 내용을 모두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EU 수출기업들이 CBAM 제도 자체에 타격을 입기보다는 EU 당국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정보를 개시 가능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교차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와 독일 환경 싱크탱크 아델피(Adelphi)는 CBAM 도입으로 EU 수출국이 받을 영향을 분석했다. 2019-2020년 CBAM 대상으로 지정된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시멘트 산업에서 EU 수출액 합계 평균치를 낸 결과 수출액이 가장 많은 국가는 러시아이고 중국, 영국, 노르웨이, 튀르키예(터키) 순으로 나타났다.
각국의 CBAM 대상제품 수출에서 EU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러시아가 가장 높아 17% 수준에 달했다.
EU는 2022년 수입액 중 CBAM 적용이 예상되는 유기화학제품과 플래스틱이 각각 1100억유로, 710억유로로 CBAM 대상 품목 중 가장 큰 철강 관련 740억유로에 필적하는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기화학제품, 플래스틱 무역 대상국은 CBAM 대상제품과는 일부 달랐으며 중국이 주요 수입국이었으나 미국, 인디아, 한국, 사우디도 상당 비중을 차지했다.
CBAM은 EU 수출을 제한하는 제도이지만 일률적이지 않으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수입제품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조치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역내 생산제품보다 수입제품이 경쟁력을 갖추는 사례도 등장할 수 있다.
EU는 CBAM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자유무역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보호무역 조치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최빈개발도상국(LDC)은 CBAM을 준수할 수 있는 행정능력을 갖추지 못한 최빈국을 차별하는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유럽위원회는 2027년까지 CBAM이 LDC 대상국의 수입제품에 미칠 영향을 평가할 예정이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 김진희 기자: kjh@chemlocus.com)
표, 그래프: <EU의 화학제품 판매비중(2021),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개요, EU의 배출권 무상할당 폐지 계획, 한국의 EU 수출액(2021), EU 수입액(2022), EU의 유기화학제품 수입국(2022), EU의 플래스틱 수입국(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