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산단지는 석유화학 사업 재편으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대산 사업장 통폐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일부 폴리머의 국내 공급가격 인상·인하를 제한하고 수요처에 대한 공급물량 제한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이다.
아마도 통합에 따른 경쟁 제한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1994년 폴리머 공급과잉이 극에 달해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자 공급가격을 담합함은 물론 거래처를 제한하는 가격·공급 카르텔을 시행한 바 있어 폴리머 공급가격을 임의로 인상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이 통합하면 국내 LDPE, EVA 생산기업 수가 한화솔루션, LG화학, 롯데케미칼, 현대케미칼 4사에서 한화솔루션, LG화학, 현대케미칼 3사로 줄어들고 판매량 기준으로 3사의 점유율이 75%를 초과해 경쟁이 제한될 소지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정위 우려대로 통합에 따라 그레이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저수익ㆍ저가 그레이드 생산·공급을 중단하면 중소 플래스틱 가공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5년간 LDPEㆍEVA의 국내 공급가격 변동률을 수출가격 변동률 기준으로 제한하고, 통합 당시 생산하던 모든 그레이드를 국내 수요처에게 공급하도록 강제하며, 가격·수량·원가·재고량 등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금지했다.
하지만, 폴리머는 국내 공급시점과 수출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워 특정기간을 기준으로 인상·인하율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고, 1994년부터 거래처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소 플래스틱 가공기업에게 압력을 가해 특정 그레이드를 공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소 플래스틱 가공기업이 석유화학 대기업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폴리머는 수출입이 사실상 자유화돼 있으나 월 사용량이 수천톤에 달하는 중견기업이 아닌 이상 수입 거래가 쉽지 않아 국내 공급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즉, 공정거래위원회가 형식적인 규제를 통해 석유화학 대기업의 임의적인 공급가격 인상 및 거래물량 조절을 막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효과가 의문시된다. 공급가격 및 거래물량 조절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감시체계 작동이 필요하나 가능하지 않다.
에틸렌을 비롯해 기초유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에틸렌·프로필렌 생산능력을 대폭 감축하는 마당이어서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기초유분 생산능력 감축에 LDPEㆍEVA 생산능력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는 빠져 있다. 에틸렌이 부족해 LDPEㆍEVA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국이 2030년까지 에틸렌·프로필렌 생산능력을 1억톤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중국의 공세를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을 25-35% 감축하면 생산이 효율화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의 노리개로 전락할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사업 재편은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생산을 효율화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을 준수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중국이 막대한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공급량을 조절해 시장을 어지럽힐 때 대응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대책도 없이 국내 생산능력을 대폭 감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이다.
현실적으로 생산을 효율화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방안을 마련할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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