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조원이 넘는 화학제품 가격을 담합한 의혹을 받는 국내 화학기업 전·현직 경영진 2명이 구속됐다. 중동전쟁을 틈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훨씬 전부터 담합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중앙지법 이지영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9월18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화학기업 전·현직 임원 8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한 뒤 배모씨, 황모씨 2명에게 영장을 발부했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유신 OCI 대표이사와 장영수 전 PKC 대표이사는 혐의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나 화학기업 현직 대표이사가 담합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특히, 화학제품 가격담합에 가담한 곳이 LG화학·한화솔루션·애경케미칼·OCI·롯데정밀화학·PKC·유니드 등으로 7사 모두 대표적인 화학기업이고 담합액수가 15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담합에 이름을 올린 화학제품은 PVC, PVC 첨가제인 가소제, PVC 생산에 투입되는 염소, 염소의 병산제품인 가성소다 등 PVC 관련제품이 많으나 TDI, ECH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CA(Chlor-Alkali)가 핵심이다.
CA 유도제품은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되는 기초 화학제품으로 투입범위가 광범위해 가격담합의 영향이 상당히 크고 소비자물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찰이 8월5일 LG화학, 한화솔루션, 애경케미칼, OCI, 롯데정밀화학, PKC, 유니드 사무실과 관계자 등 80곳에 이르는 곳을 상대로 압수수색에 나서며 강제수사에 착수한 배경이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통해 화학기업 중간 간부와 임원진이 여러 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과 인상 폭을 논의한 정황을 확보하고 LG화학 PVC·가소제 사업부장, OCI 대표이사, 전 PKC 대표이사 등을 잇달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기업들의 가격담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오래된 관행으로 남아 있다. 1970-1980년대까지 국내에서 생산하는 화학제품이 많지 않고 공급도 턱없이 부족해 독과점이 성행함으로써 가격을 마음대로 올려도 반발할 수 없는 시장구조가 정착될 수 있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합성수지 가격 및 거래 담합 혐의로 엄청난 금액의 과징금을 부과받고도 가격담합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것도 과거의 독과점 관행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재판을 통해 철저히 응징함으로써 다시는 가격담합에 나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정거래 당국이 2월 밀가루·설탕·전력 분야에서 10조원 상당의 담합에 관여한 관련기업 임직원 52명을 재판에 넘겼고, 4월에는 10조원대 전분당 가격담합 혐의로 CJ제일제당·대상·사조CPK를 기소했으며, 7월에는 14조원에 달하는 석유제품 가격담합과 관련해 정유기업 4곳을 재판에 넘긴 것은 가격담합을 척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학기업들은 관행으로 굳어진 독과점 및 가격담합 유혹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하며, 건전한 경쟁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림으로써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신자세를 올바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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