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학기업 도레이(Toray)가 탄소섬유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도레이는 「소재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탄소섬유 브랜드 Toreca와 CFRP(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를 공급하고 있으며, 특히 PAN(Polyacryonitrile)계 CFRP로 세계시장을 50% 이상 장악하고 있다.
도레이는 장기간에 걸친 연구개발(R&D) 끝에 1971년 탄소섬유 상업생산을 시작했고 개발 초기단계부터 자동차, 항공기, 원자력발전용 원심분리기 등을 대상으로 적용을 시작했으며 스포츠·레저용품을 시작으로 자동차, 항공기, 풍력발전기 날개 등으로 용도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탄소섬유는 초기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레이온(Rayon)과 대나무를 밀폐 용기에 넣고 가열하는 방식으로 생산했다.
1962년 최초 개발 후 UCC와 협력으로 상업화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PAN계 탄소섬유는 일본 공업기술원 오사카공업기술시험소(산업기술종합연구소 간사이센터)의 신도 아키오 박사팀이 개발해 1962년 기본특허가 성립됐다.
PAN계 탄소섬유는 PAN 원사를 고온의 불활성 상태에서 여러 차례 가열해 탄소 이외성분을 제거한 후 생산하며 고탄성 탄소섬유는 성분이 대부분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가볍고 강도 및 탄성이 뛰어나며 인장강도를 비중으로 나눈 비강도가 철의 약 10배, 인장탄성률을 비중으로 나눈 비탄성률이 약 7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열화되지 않고 녹슬지 않으며 화학적·열적으로 안정돼 혹독한 환경에서도 장기간 안정적인 특성을 발휘하는 특징이 있다.
당시 여러 화학기업들이 탄소섬유를 주목했으며 도레이도 1961년부터 원료인 아크릴섬유(Acrylic Fiber) 개발팀이 연구를 시작했다.
원료 개발부터 난관에 부딪쳤으나 가설을 세우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중 나일론수지 개발자가 PAN의 원료에 HEN (Hydroxyethyl Acrylonitrile)을 공중합함으로써 성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탄소섬유 실용화가 가능해진 도레이는 1970년 신도 아키오 박사의 특허를 취득해 양산기술을 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제조에 필요한 2600-2800℃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는 설비가 없어 모든 기계를 직접 제작했다.
이후에는 초고온 환경에서 탄소섬유 자체가 타버려 섬유제품으로 완성하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했고 미국 탄소섬유 생산기업 Union Carbide(UCC)와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해결했다.
도레이가 원료로 레이온을 채용하던 UCC에게 고성능 원료 기술을, UCC는 도레이에게 제조 프로세스를 전수했다.
도레이는 1971년 탄소섬유를 사업화했으며 최근까지도 시장 개척 및 성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낚싯대 경량화 이어 골프샤프트에도 적용
도레이는 탄소섬유를 개발한 직후 영업 담당자와 기술자가 팀을 이루어 샘플을 가지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으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럽 우주국(ESA)도 방문했다.
그러나 1972년 일본에서 탄소섬유가 낚싯대에 채용된 것이 기술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낚싯대에는 당시 유리섬유가 사용됐으며 8미터짜리 낚싯대의 무게는 약 800g에 달했다.
도레이는 바깥쪽에 탄소섬유, 안쪽에 유리섬유를 사용해 무게를 대폭 경량화한 시트를 개발해 제안했으며 낚싯대 생산기업들이 일제히 사용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경량화에 대한 요구가 계속 높아짐에 따라 신규 그레이드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낚싯대는 휘어질 때 가장 바깥쪽이 힘을 지탱함에 따라 바깥쪽에 투입하는 탄소섬유의 강도를 향상시키고 단면적을 줄임으로써 경량화를 추진한 결과 최근 10미터짜리 낚싯대의 무게를 신문보다 가벼운 180g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도레이는 1973년 낚싯대에 이어 골프샤프트용으로 탄소섬유를 공급하며 스포츠·레저용으로 노하우를 축적함과 동시에 자동차 및 항공기 생산기업에 대한 접근을 계속했다.
2008년 비행기 기체에 전면 채용
미국 항공기 생산기업 보잉(Boeing)은 1975년 보잉767의 스포일러, 엘리베이터 등 2차 구조소재에 T300 그레이드를 채용했다.
도레이는 다음으로 알루미늄계 합금이 사용되던 주날개, 꼬리날개 등 1차 구조소재에 대한 채용을 목표로 했다.
보잉으로부터 인장강도 및 탄성을 향상시키고 알루미늄보다 무게를 30% 줄이면 1차 구조소재로 시험할 수 있는 기준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T300에 비해 강도를 약 2배, 탄성치를 20-30% 향상시킨 T800H 그레이드를 개발했다.
보잉은 새와 충돌해도 부서지지 않는 성능까지 요구했다. 알루미늄은 새와 부딪혀도 강도가 떨어지지 않으나 CFRP는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항공기용 CFRP는 주로 에폭시수지(Epoxy Resin) 등 열경화성 수지가 사용되고 있어 열경화성 수지 가운데 새롭게 발명한 열가소성 미립자를 분산시켜 문제점을 보완했으며 1996년 보잉777의 꼬리날개 등 1차 구조소재에 대한 적용에 성공했다.
보잉767은 탄소섬유 사용량이 약 1톤에 불과했으나 보잉777은 약 7톤으로 증가했고, 이후 보잉은 차세대 기종인 보잉787의 기체에 2008년 도레이가 새롭게 개발한 T800S 그레이드를 전면 채용했다.
도레이는 2차 구조소재로 채용된지 20여년만에 탄소섬유가 항공기용 소재로 인정받은 것을 자랑하고 있다.
대폭적인 경량화를 달성한 보잉787은 연비가 향상됨에 따라 직행할 수 있는 항속거리가 증가함으로써 친환경성 뿐만 아니라 쾌적성도 향상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CFRP는 이후 소형 항공기를 비롯한 항공우주용, 풍력발전기용 블레이드, 수소압력용기 등 공업용 뿐만 아니라 운동화 등으로 용도가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용은 제조코스트 절감에 주력
자동차용은 경주용 자동차, 고급 승용차를 중심으로 채용되고 있다.
도레이는 1980년대부터 F1 경주용으로 탄소섬유 프리프레그(Prepreg)를 공급했으며 차체 경량화가 필수적인 전기자동차(EV)가 대두됨에 따라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양산 자동차에 적용하기에는 높은 가격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용 CFRP는 코스트 감축 및 성형시간 단축이 요구돼 탄소섬유 가운데 가격이 낮은 라지토우(Large Tow)가 투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가공방법도 이노베이션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도레이는 2014년 미국 라지토우 생산기업 Zoltek을 인수한데 이어 2018년 3월 항공기용 CFRP 생산기업인 네덜란드 TenCate 인수 계획을 발표하는 등 최대 메이저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