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석유화학 10사가 2025년 8월 구조조정 자율협약을 맺고 과잉 생산능력을 감축하겠다고 나선 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곧 구조조정에 들어가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었으나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고 12월까지 해결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태이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자율 구조조정을 외친 것은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하는 척 흉내를 낸 상태에서 정부의 세금 지원을 비롯한 각종 특혜를 이끌어내기 위한 형식적 행위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석유화학기업들도 문제이지만, 화학산업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더 큰 문제이다. 산업부는 오래전부터 고질적인 석유화학 과잉투자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심했고 머지않아 난리가 날 것이라는 점도 짐작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 석유화학기업들이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을 시작으로 각종 세금 지원을 요구했을 때 실행력 있는 구조조정 방안을 유도하고 실천에 옮겼어야 함에도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기에 바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과잉투자 문제가 산업부에도 책임이 있어 과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이 되나 그렇다고 석유화학기업들에게 끌려다니면서 국민세금이나 축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업부는 금융위원회에 짐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칼자루를 쥐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든가 아니면 무능을 인정하고 석유화학 구조조정 작업에서 손을 뗄 것을 권고한다. 과잉투자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경제산업성 주도로 오일쇼크에 대응해 석유화학 구조재편을 실행했고, 2014년에는 중국의 자급률 상승과 일본 수요 위축을 고려하면 2030년 에틸렌 수요가 470만톤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하고 화학기업 10사에게 에틸렌 생산능력 720만톤을 자율적으로 통폐합하라고 권고했고 이후 구조조정에 들어가 현재는 에틸렌 생산능력이 600만톤으로 줄어들었고 머지않아 500만톤 아래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일본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PS, PVC를 중심으로 합성수지도 구조재편을 통해 생산능력을 감축하고 생산기업 수를 크게 줄인 바 있으며, 최근에는 PE, PP를 중심으로 폴리올레핀 통폐합에 나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플랜트를 폐쇄하고 생산품목을 재배치해 효율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구조재편은 경제산업성과 화학기업 모두 중국의 자급률 급상승과 일본 수요 감소에 의견이 일치했고 구조조정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동시에 작용했다. 일부에서는 통폐합 과정에서 독과점·담합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거래법상 예외를 허용하고, 양도소득세·취득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강조하고 있으나 한국과는 다르다는 점 분명하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1994년 합성수지 카르텔을 통해 가격을 대폭 인상한 것에 그치지 않고 거래처까지 지정함으로써 독점 거래의 횡포가 일반화되고 장기간에 걸친 엄청난 이익을 바탕으로 과잉투자에 나서 오늘날의 적자 장기화를 유발한 바 있다.
정부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더이상 산업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과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33조원에 달하는 부채 해결 압박을 통해 해결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