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지아는 2018년 5월 총선에서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수상이 이끄는 야당 연합이 승리하면서 1967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5년만에 복귀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수상은 전 정권의 대규모 인프라 지출로 타격을 입은 국가재정 재건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어 고속철도 계획 등을 중단 및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지아는 건설경기 악화가 불가피해지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B2B(Business to Business) 지급이 지체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18년 말 말레이지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4.7%로 햐향 조정했다.
그러나 국영 Petronas Chemicals Group(PCG)이 추진하고 있는 RAPID(Refinery & Petrochemical Industry Development) 프로젝트는 완공단계에 접어들어 아시아 석유화학 시장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아람코 참여로 프로젝트 완료단계
말레이지아 신정권은 다양한 정책 변경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인프라 사업을 제외하고는 산업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8년 10월 개정한 5개년 국가계획(2016-2020년)에서는 부패박멸, 격차시정, 인재개발, 친환경 등을 기본방침으로 설정했으며 제조업은 계속 전자·전기, 기계, 화학, 의료기기, 항공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화학 시장에서는 2019년 PCG와 아람코(Saudi Aramco)가 합작 투자한 석유정제·석유화학 컴플렉스 RAPID가 일부 시험가동에 들어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APID는 총 투자액이 27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RAPID는 2014년 후반부터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PCG의 모기업 페트로나스(Petronas)의 자금력 악화로 유도제품 사업이 축소되는 등 일시적으로 프로젝트 존속이 불투명해졌으나 2018년 아람코의 투자를 받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람코는 정유공장에 투입하는 원유의 최대 70%를 공급할 목적으로 RAPID에 참여함으로써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함과 동시에 석유화학제품 생산으로 자국 자원을 고부가가치화할 수 있는 이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 구조개혁 Vision 2030에도 적합한 투자로 평가하고 있다.
PCG는 RAPID와 관게없이 2018년 1-9월 매출액이 전년동기대비 15%,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가 8% 증가해 호조를 유지했다.
2019년 상업가동 후 영향력 주목
대규모 석유정제·석유화학 컴플렉스 RAPID는 본격적으로 상업가동에 들어가면 아시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유공장은 석유정제능력이 30만배럴로 2019년 1월 시험가동을 시작했으며 6월까지 상업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하는 NCC(Naphtha Cracking Center), RFCC(Residue Fluid Catalytic Cracker)는 상반기 시험가동에 착수하고 PE(Polyethylene), PP(Polypropylene) 등 유도제품은 2019년 상업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NCC는 에틸렌(Ethylene) 생산능력이 120만톤, 프로필렌(Propylene)은 70만톤으로 3월 시험가동에 들어갔으며 5-6월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아시아 공급과잉을 확대할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PE(Polyethylene) 75만톤 플랜트를 상업 가동하더라도 에틸렌을 100% 소화할 수 없어 동남아 시장의 공급과잉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로필렌도 NCC와 RFCC를 포함해 생산능력이 총 130만톤에 달해 PP 90만톤 플랜트를 가동하더라도 일부를 수출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로필렌은 톤당 900달러 중반으로 강세를 장기화하고 있으나 RAPID가 시험가동에 들어가면서 하락세로 전환됐고 앞으로는 800달러대 초반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페트로나스는 RAPID 재투자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으며 한차례 포기한 바 있는 유도제품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해외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과잉물량이 많은 프로필렌, C4계 유도제품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일본 및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기업들과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PCG 요구제품과 해외기업이 사업화를 원하는 유도제품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빠르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 해외기업 재투자 의욕 고조
마하티르 수상은 1981년 제4대 수상시절 경제발전을 위해 유럽 대신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선진국으로부터 배우자는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펼쳐 주목받았다.
따라서 아시아 메이저들에게는 마하티르 수상의 재취임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으며, 말레이지아에 진출한 해외기업들은 재투자에 높은 의욕을 보이고 있다.
도요타(Toyota Motor)는 2019년 1월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인근에 위치한 슬랑오르(Selangor) 소재 클랑(Klang)에 약 500억엔을 투입해 승용차 공장을 완공했다. 생산능력은 5만대로 소재 및 부품 수요 활기가 기대되고 있다.
화학 분야에서도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조호르(Johor)에서는 SDP글로벌(SDP Global)이 종이기저귀 등의 흡수소재로 사용되는 SAP(Super-Absorbent Polymer)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신토머(Synthomer)는 2018년 11월 NBR(Nitrile Butadiene Rubber) 생산설비를 증설했다.
이데미츠코산(Idemitsu Kosan)은 고기능성 수지 SPS(Syndiotactic Polystyrene) 사업화를 검토하고 있다.
쿠안탄(Kuantan)에서는 폴리플라스틱스(Polyplastics)가 대규모 EP(엔지니어링 플래스틱) 플랜트를 가동하고 있는 가운데 2019년 POM(Polyacetal) 및 PPS(Polyphenylene Sulfide) 컴파운드 생산능력을 확대하기로 결정했으며 POM 중합설비 증설도 검토하고 있다.
BASF Petronas는 2021년을 목표로 아크릴산(Acrylic Acid) 및 유도제품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스트만케미칼(Eastman Chemical)은 공중합 폴리에스터(Polyester)를 증설했다.
도레이(Toray)는 피낭(Penang) 공장의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생산능력을 2020년까지 약 43만톤으로 20% 확대할 방침이다.
합성고무도 복수기업이 사업화를 검토하고 있다.
말레이지아 정부가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유지화학제품(Oleochemical) 분야에서는 2019년 미국 바이오화학기업 리프리소시스(Leaf Resources)가 2021년 가동을 목표로 조호르에서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발효성 당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바르디자인(Bar Design)도 조호르에 야자 유래 이염기산(Diprotic Acid) 공장을 건설해 2019년 가동할 예정이었으나 2018년 가동을 눈앞에 두고 공사를 중단했다.
현지 대기업이 자본투자를 철회했기 때문으로,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고심…
말레이지아에서는 최근 전자·전기 분야 등에서 퇴출이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2016년 TV 공장을 폐쇄했으며 당시 삼성전자와 거래하던 수지 가공기업들은 매출이 50% 수준 격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8년에는 담배 메이저 British American Tobacco(BAT)와 JT인터내셔널(JT International)이 공장 가동을 중단해 포장 분야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4%대 후반의 경제성장률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말레이지아 산업개발청(MIDA)에 따르면, 2018년 1-9월 제조업의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인가 기준 488억링깃으로 전년동기대비 3.5배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프리소시스 외에 스위스 반도체 생산기업 STM(ST Microelectronics) 등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급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2018년 1-9월 말레이지아 제조업 FDI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1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마하티르 수상은 중국 의존도를 재검토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으며 거액의 자금 부담을 이유로 말레이반도 동부지역의 고속철도 계획을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말레이반도 동부지역에서는 Alliance Steel 등 중국 2사가 용광로 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동부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늦어지고 있어 전 정권은 고용 확보 및 경기 부양을 위해 중국자본을 특히 많이 받아들였다.
마하티르 정권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조속한 방향 설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폐플래스틱 수입규제 및 환경규제 강화
말레이지아는 2019년 1월부터 쿠알라룸푸르, 프탈링자야(Petaling Jaya), 라부안(Labuan) 소재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회용 빨대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수도권 편의점에는 생분해성 수지 베이스 비닐봉투가 이미 보급되고 있다.
비 인 여오 말레이지아 환경부 장관은 2018년 9월 “2030년까지 일회용 플래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정책화될지는 불투명하나 토양, 수질, 대기 관련 환경규제를 강화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조호르에서는 2019년 8월부터 당국에 대한 실시간 폐가스 투과도 보고가 의무화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말레이지아 정부는 2018년 7월 말 폐플래스틱 수입 라이선스의 신규 발행도 중단했다.
중단기간은 원래 3개월이었으나 10월 이후에도 발행을 재개하지 않고 기존 유자격기업에 대해서만 가공·수출을 필수조건으로 수입을 허가하고 있으며 매립처리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폐플래스틱은 2016년 중국이 수입을 금지한 이후 말레이지아, 타이, 베트남에 유입됐고, 말레이지아는 중국 플래스틱 리사이클기업이 쇄도해 처리능력 이상으로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다양한 피해가 발생해 수입 라이선스 발행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8년에는 1-7월에만 주로 유럽 및 미국으로부터 폐플래스틱 약 50만톤이 유입돼 7개월만에 2017년 총 유입량인 30만톤을 크게 상회했다.
중국산 대체에 할랄제품 수출 허브 육성
말레이지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수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대체 수출국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2018년 7월 미국산 대두에 25%의 높은 관세를 적용했으며 대두는 주로 동물사료 및 유지용으로 사용됨에 따라 대체소재로 말레이지아산 야자 수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발동을 유예한 제3탄 추가관세 대상에는 전자기기, 통신기기가 다수 포함되고 있으며 말레이지아는 반도체 등 전자·전기산업 집적도가 높아 미국수출을 통해 중국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수출 분야에서는 할랄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주목받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정부기관이 식품, 생활용품 등에 대한 할랄 인증을 통일적으로 심사해 부여하고 있어 국제적으로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또 전국 약 15곳에 할랄 전용 공업단지를 건설해 물류 및 각종 인프라, 세제를 지원하는 등 글로벌 메이저를 포함한 할랄 서플라이체인 집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도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
말레이지아 기업육성부는 2018년 11월 말 일본 경제산업성과 일본기업의 할랄인증 취득, 관련무역 추진, 도쿄올림픽에 방문하는 무슬림에 대한 대응지원 등을 목적으로 할랄 관련협력에 관한 각서를 체결했다.
말레이지아 정부는 자국을 18억명에 달하는 이슬람 경제권에 대한 수출허브로 설정하고 세계 각국의 제조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