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기술개발이나 투자가 순조롭지 않다.
국내에서는 한때 정유·석유화학과 제철기업을 중심으로 수소 투자를 본격화하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제철이나 석유화학 모두 오늘 살아가기도 힘든 판국에 무슨 수소 타령이냐고 항의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수소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경영상태나 처지에 따라 관심을 두고 말 만큼 한가롭지 않다. 기술개발이나 투자를 소홀히 하면 종속변수로 전락해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음은 물론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수소 기술개발에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이다. 일본은 민·관 협력을 통해 수소 기술을 개발하고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오세아니아 등에서 수소나 암모니아를 생산한 후 수입하는 장거리 운송까지 실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수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15년간 민·관 공동으로 약 15조엔을 투자해 수소 공급망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액화수소 운반 실증까지 진행하는 등 2030년까지 수소 공급가격을 33%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일본은 액화수소 저장·운반을 중심으로 수소 공급망 전반의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9000km 이상의 해상운송 실증을 진행하고 있고, 영하 253도로 냉각한 액화수소 운반이나 암모니아 결합 운반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은 대규모 투자, 정책적 지원, 기술 실증을 바탕으로 수소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수소를 에너지 안보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육성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수소버스 보급 확대에 주력하면서 충전 인프라 확충을 진행하고 있으나 수소버스는 2025년 4월 기준 1982대, 충전소는 152기 운영이 전부이다. 원자력을 활용한 핑크수소 생산도 실증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레이수소나 그린수소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으나 특허 출원 수준에 그치고 실증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생산·운송·저장 등 수소생태계 전반의 투자와 기술력이 뒤떨어지고 수소 공급망 정비나 공급가격 안정화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수소 제조에는 화석연료 개질과 수전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화석연료 개질은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화석연료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경제적이나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환경적 문제가 발생하고,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법은 고순도 수소를 얻을 수 있으나 전력 코스트가 높고 효율성은 낮은 단점이 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수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이다.
기술 수준이 높아 선진국들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으며 초저온으로 액화한 후 운송하거나 암모니아와 결합해 액화 상태로 운반하는 기술도 일본이 개발의 중심에 서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외면하고 있으나 전력문제를 고려하면 수소 에너지를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데이터센터를 대량 건설하면 전력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전력 부족 문제가 발생하면 정유·화학은 전력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의문이다. 미국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2027년에는 AI 데이터센터의 40%에서 전력 가용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SMR, 수소 투자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기술이나 공급 주도권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