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면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화학제품 전환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범용 석유화학제품은 중국이 자급화를 서두르면서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고 중동에 이어 미국까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면서 더 이상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수적이고 에틸렌, 프로필렌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하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다만, 중국이 에틸렌과 프로필렌 생산능력을 1억톤 안팎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대책도 없이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고, 생산능력 감축 이전에 스페셜티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행태로 볼 때 스페셜티 전환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며 여러 가지 장벽을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이 불가피하다. 매출액이 수십억원 또는 수백억원에 불과한 스페셜티 화학제품으로는 양이 차지 않을 것은 분명하고, 원료를 투입해 최종제품 생산까지 수직계열화돼 있는 특성을 거스르는 작업도 쉽지 않다.
특히, 기술적인 어려움이 크며 현재의 연구개발 환경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연구개발 대상품목이 달라지는 것도 문제이려니와 연구소 책상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자세로는 스페셜티 대상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개발은 더더욱 어렵다.
화학저널이 2000년 이전부터 일본처럼 자동차, 전자, 반도체 소재를 개발해 고부가화·차별화할 것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스페셜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국내 산업이 발전하지 못해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연구개발 환경, 연구개발자의 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5-6년 전 국내 화학산업계에는 노벨화학상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상당했다. 몇몇 인사가 거론되고 2-3년 후에는 노벨상을 받을 것처럼 요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벨화학상을 받기는커녕 생사가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밤 세워 연구·실험과 씨름해도 모자란 판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골프 치고 등등 연구개발과는 동떨어진 놀자판이 대세인 국면에서 노벨화학상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정부가 석유화학기업들을 모아 연구개발 대상을 선정하고 지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연구개발 주체의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재명 정부는 연구소까지 주 48시간 노동에서 한발도 물러설 의향이 없다. 제도적·환경적 한계가 뚜렷한 것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에틸렌, 프로필렌에서 나아가 3차, 4차 유도제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필요가 있으나 개발 자체가 어렵고 수요기업과의 소통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일부 중견 화학기업들이 시도하고 있어 기대가 크나 대기업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떨쳐버리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벤처기업과의 협업을 적극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도체 소재는 전공정과 후공정 모두 일본산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고 중국도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중국에도 뒤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이미 후공정 중심으로 개발체제를 전환하고 있고 중국도 후공정 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를 타고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고 하나 수익의 상당 부분은 일본 화학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만약,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할 당시에라도 석유화학기업들이 개발을 적극화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이미 매출액이 수조원, 수십조원에 달해 정부 지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고, 뼈를 깎는 자성 없이는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굳어진 체질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정부는 스페셜티화를 추구하고 있는 중견 화학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반도체 소재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벤처기업 육성에 집중할 것을 권고한다. 지원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그렇고, 성과를 올리는 측면에서도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