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가동률 85%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가동률을 낮추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가동률 85%가 무너지면 고정코스트가 상승해 적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기술적 발전으로 마지노선 가동률을 80%로 낮추는 경향도 감지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일본이 스팀크래커를 건설한 지 50년이 넘어 마지노선을 80%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도 일부 스팀크래커가 건설한 지 50년이 넘었으나 대부분은 1990년 무렵에 건설해 30년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가동률을 80%로 떨어뜨려서는 수익을 올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삼성·현대그룹의 신규 참여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던 1990년대 초반 더이상 위기를 감내할 수 없다며 폴리올레핀 수급 및 가격 담합에 나섰을 때도 화학저널은 가동률을 85-90%로 조정하면 적자를 면할 수 있다며 가동률 조정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당시 상공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눈감아주는 형식으로 카르텔을 승인해줌으로써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는 SK와 대림을 제외하고는 스팀크래커 대부분을 신규로 건설해 가동한 지 3-4년에 불과했기 때문에 가동률 감축을 꺼릴 수밖에 없었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쳐 가동률을 감축해도 아시아 가격이 상승한다는 보장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물론, 1994년 봄부터 글로벌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서면서 폴리올레핀 수급 및 가격 담합까지 겹쳐 적자를 커버함은 물론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카르텔로 만들어진 수익구조가 정착되면서 신증설 열풍이 다시 불었고 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침으로써 현대가 몰락하고 삼성도 석유화학 사업에서 철수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석유화학산업도 1990년대 초반과 엇비슷하게 흘러가는 측면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중동의 신증설 열풍으로 석유화학 불황이 예고됐지만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뒷받침되면서 피해갈 수 있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중국 수요 호조를 타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자급률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셰일 열풍을 타고 에틸렌, PE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확장국면에 들어가면서 PE, MEG 가격이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겹침으로써 중국의 수입수요에 의지하던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점차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2019년에는 간신히 적자를 면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2020년에는 적자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궁지에 몰리자 가동률 조정을 통해 적자 줄이기에 나서고 있으나 마지노선 가동률인 85%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장기간의 무역마찰 끝에 확전을 피하기로 합의해 한가닥 희망이 보이고 있으나 중국 경제가 6% 성장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판국에 미국 석유화학기업들이 PE 수출을 확대함은 물론 에틸렌 수출을 적극화함으로써 가동률 85% 지키기가 지극히 난망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석유화학기업들은 가동률을 85% 이하로 떨어뜨리기보다는 100% 가동하면서 과잉물량을 저가에 수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측면에서 아시아 석유화학기업들이 궁지에 내몰릴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2-3년 버티면 살아날 수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나 중국 경제의 후퇴를 고려할 때 희망에 그치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마지노선 가동률 85%를 지켜낼 수 있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