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시아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 급증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2020년 2-3월 코로나19가 발원지인 중국 우한(Wuhan)에서 출발해 중국 전역과 한국으로 확산되는 동안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잠잠했으나 무증상 감염자 색출에 실패하면서 최근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화학공장 가동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석유화학 신증설을 연기하고 있어 아시아 수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싱가폴, 코로나19 확진자 80%가 외국인 노동자
싱가폴은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며 화학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숙사 등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어 집단감염으로 확대되면 진단검사에서 양성이 나오지 않아도 2주 동안 자가격리해야 해 공장 유지보수와 물류업무 등이 차질을 빚고 있다.
싱가폴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화학기업들은 인원 배치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 인디아 등 서남아시아와 미얀마 출신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4월 중순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고 보고됐고 4월21일에는 전체 확진자 수가 9125명을 기록한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7127명이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이 확인됐다.
정유공장과 석유화학 플랜트가 밀집된 주롱섬(Jurong)은 화학기업 뿐만 아니라 각종 장치와 설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창고‧물류 관련기업이 많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롱에서 MMA(Methyl Methacrylate), PMMA(Polymethyl Methacrylate)를 생산하고 있는 Sumitomo Chemical Asia도 설비 가동을 지원하는 협력기업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일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화학기업, 인력 부족으로 가동차질 우려
주롱섬 소재 정유공장과 화학기업 대부분은 외국인 노동자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등이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타격을 받고 있다.
정유‧화학기업들은 서로 원료와 생산제품을 거래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1곳이라도 가동에 문제가 발생하면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외국인 노동자 감염으로 근무인력 수가 줄었음에도 인원을 재배치하는 방법으로 모든 생산설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싱가폴 화학기업들은 인근 말레이지아가 3월부터 봉쇄조치를 시행했을 때에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싱가폴에서 말레이지아로 출퇴근하는 인원이 30만명에 달하지만 봉쇄조치와 함께 출국이 금지됐고 대부분이 화학과 관련된 업무 종사자로 파악되고 있다.
싱가폴도 4월21일 부분적 봉쇄조치를 강화해 6월1일까지 연장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자국 신규 확진자 수를 0명 혹은 한자릿수로 줄일 때까지 외출자제 명령을 유지할 예정이며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벌금과 실형 등 강력한 처벌을 내릴 방침이다.
석유화학을 비롯한 필수적인 산업은 영업 유지를 허가받은 상태이나 인력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CAP, 에틸렌 100만톤 증설 연기
인도네시아 화학산업도 정부 봉쇄조치로 타격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4월10일부터 2주 동안 수도 자카르타(Jakarta)를 부분 봉쇄했다.
자카르타의 상업시설이 전면 폐쇄됐고 주변 지역에 소재한 자동차, 가전 공장 등도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합성수지, 합성고무, 컴파운드 물류가 정체되는 등 화학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최대 화학 메이저인 Chandra Asri Petrochemical(CAP)은 NCC(Naphtha Cracking Center) 풀가동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No.2 크래커 건설은 최종결정을 연기했다.
수도 자카르타가 부분 봉쇄에 들어가면서 도요타자동차(Toyota Motor), 혼다(Honda) 등 자카르타 인근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자동차기업들도 가동을 중단했다.
폴리올레핀(Polyolefin),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수지와 필름, 합성고무 등 석유화학제품은 식품포장용과 의료제품용 수요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자동차, 이륜차, 의류, 구두 관련 수요는 급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바섬(Java) 서부의 반텐(Banten)에 집적된 석유화학 플랜트들은 가동 유지를 허가받았으나 실제로는 공장별로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와 PET 수지, 폴리에스터(Polyester) 섬유 등을 일관생산하는 인도라마(Indorama)는 4월 PET 플랜트의 가동률을 평균 50% 이하로 낮추었고 5월에는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미츠비시케미칼(Mitsubishi Chemical)은 자카르타에 소재한 관리부문 직원을 일시적으로 감원했고 관리부문을 PTA와 PET필름 생산설비가 소재한 반텐으로 옮겨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CAP는 반텐에서 PE(Polyethylene) 라인 1개를 제외하고 No.1 NCC를 포함해 모든 생산설비를 풀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에틸렌 생산능력 100만톤의 No.2 NCC 투자는 반년에서 1년 정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2024년 상업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 화학제품 물류는 해상물류량의 60% 이상을 취급하고 있는 최대 상업항인 Tanjung Priok 항이 큰 차질 없이 정상 운영되고 있어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수요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에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고 대금 지급이 늦추어지는 등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풀가동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CAP도 수요기업들에게 대금 선지급을 요청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5월6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만2438명, 사망자 수는 895명을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4월23일부터 시작하는 이슬람교의 금식기간인 라마단 행사 동안 사람들이 모여 식사하거나 라마단 이후 시작되는 축제 때 귀성하는 것을 금지했다.
말레이, 코로나 영향으로 화학산업 타격
말레이지아도 화학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동남아 지역에서 주요 화학제품 수출기지로 자리를 잡고 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3월18일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이동제한 명령(MCO)을 내리고 경제활동과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 근무하는 석유화학기업 사무직들은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석유화학 및 합성수지 플랜트는 여전히 평상시의 가동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봉쇄조치 때문에 화학제품 원료 조달과 출하에 혼란이 빚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호조를 나타내고 있는 중국 수출이 자동차, 가전 공장 가동중단 등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화학산업도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동일하게 봉쇄조치 속에서도 기초화학제품이나 범용수지 생산은 허가하고 있다.
국영 Petronas Chemicals(PCG)은 말레이 반도 동해안에 위치한 케르테(Kerteh)에서 에틸렌(Ethylene) 크래커를 가동하고 있으며 4월에도 거의 풀가동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PCG는 케르테에서 ECC(Ethane Cracking Center) 2기를 중심으로 합섬원료 P-X(Para-Xylene), EG(Ethylene Glycol), 그리고 PE를 생산하고 있다.
반면, EP(엔지니어링 플래스틱) 공장들은 당국의 무조건 가동 허가 대상이 아니어서 새로 인가를 받아야만 가동이 가능한 상태이다.
다만, 쿠안탄(Kuantan)에서 POM(Polyacetal)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Polyplastics Asia Pacific은 봉쇄령이 내려지기 이전에 관련 인가를 획득함으로써 가동을 이어가고 있다.
필름 메이저인 Scientex와 의료용 고무장갑 분야의 세계 최대 메이저인 Top Glove 등 대기업들을 제외하면 중소 수지 가공기업들은 당국의 인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공장 가동을 중단한 곳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류 정상화에도 중국 수출 불확실성 확대
말레이지아는 봉쇄조치 시행과 함께 자동차, 가전 공장에 대해 가동을 중단토록 조치했으나 4월 셋째주부터 수출용 완성차 가운데 사전에 신청한 물량은 제한적으로 생산 재개를 허용했다.
봉쇄조치 속에서도 물류산업 역시 계속적인 운영을 허가함으로써 화학물류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고 있다.
기초화학제품 장기계약물량 등도 문제없이 예정대로 출하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탱크 보틀넥 현상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가까운 포트크랑(Port Klang)이나 싱가폴에 인접한 조호르(Johor)의 탄중펠레페스(Tanjung Pelepas) 등 주요 상업항에서는 직원 부족 문제로 하역 작업이나 통관 업무가 일부 중단됐고, 4월13-15일 3일 동안 한시적으로 인력을 대폭 늘려 축적된 화물 통관 처리를 집중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대처한 바 있다.
말레이는 기초화학제품과 수지를 대부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중국이 3월 들어 화학공장 가동률을 높이면서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으나 일부 관계자들은 중국의 가동률 상승이 정부의 정책에 따른 것일 뿐 실제 수요와 연결될지는 미지수라고 우려하고 있다.
말레이는 인구가 4246만명에 달하고 있으며 4월28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780명, 사망자 수는 98명을 기록했다.
대규모 종교행사 중 집단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이며 전국 각지에서 확진자 수가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어 봉쇄조치를 조기에 완화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