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저널 2020.01.20
국내 화학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화학기업이 다 고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부는 불황 속에서도 양호한 경영실적을 올리고 있다.
석유화학이나 정유는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2018년 4분기부터 고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나 정밀화학, 특히 스페셜티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화학기업은 경영실적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범용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차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국, 일본 화학기업들도 범용을 중심으로 생산하는 곳은 적자에 시달리거나 수익성이 좋지 않은 반면 스페셜티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적자에 내몰리지 않고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범용을 생산한다고 모두가 고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스페셜티 화학제품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공급과잉 국면에서도 양호한 경영실적을 올리고 있다.
일본 신에츠케미칼은 PVC를 중심으로 염소 베이스 화학제품을 생산하면서 반도체용 등 실리콘 베이스 화학제품을 특화시킴으로써 2019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PVC 사업 자체도 흑자를 올리고 있을 정도이다.
실리콘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PVC라는 범용 중의 범용제품을 생산하면서 매출을 확대하고 흑자를 올릴 수 있을까?
PVC도 다 PVC가 아니고 PVC가 모두 범용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가 범용 중심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 그레이드를 개발해 차별화함으로써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으로, 일본과 한국의 PE, PP, PVC 수출가격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흔히 범용이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범용에 그치지 않고 촉매, 첨가제, 안료 등을 투입해 차별 그레이드를 개발하고 용도를 개척함으로써 범용을 고부가가치화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신에츠케미칼은 미국에서 셰일가스 베이스 석유화학 신증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미국과 다르게 에틸렌 생산능력 100만-150만톤 크래커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에틸렌 60만톤 수준의 소형 크래커를 건설할 정도로 시장의 흐름에 좌우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서 에틸렌을 120만-130만톤 확대할 필요가 있으나 수요의 50%만 자체 조달하고 50%는 상업 조달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미국은 에틸렌 제조코스트가 톤당 300달러 수준으로 아시아 나프타 크래커 700-800달러의 30-40%에 불과해 100% 외부 조달해도 PVC의 수익성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50%는 자체 조달함으로써 시장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생산체제를 갖추겠다는 것으로, 반대로 100% 자체 생산해도 충분하나 혹시나 제조코스트가 올라갈 것에 대비해 50%를 외부에 의존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이라면 100% 자체 조달을 선택했을 것이고, 고정코스트를 낮추기 위해 대형 크래커를 건설한 후 20-30%는 상업 판매하는 방향으로 결정했을 것이다. 원료코스트가 크게 불리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아시아는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경영전략이 중요한 이유이고, 특히 집단적 판단오류를 범하는 사태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경영진의 판단 착오가 화학기업의 장래를 망치는 사례는 허다하다.
<화학저널 2020년 1월 20·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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