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화학기업들이 20년 불황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1900년대식과 다른 2000년대식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은 1900년대 중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향상을 도모했으나 위기의식이 실종된 가운데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고 통합에만 열중했으며 과거의 영광에 도취한 대기업들이 정권마다 바뀐 성장전략을 쫓아감으로써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거의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의 틀에서 벗어나 차별화‧고부가가치화를 기치로 내걸고 또다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산업 지형이 미국‧유럽‧일본 중심에서 중국이 급속히 대두되면서 생산물량이 아닌 차별화 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이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고 아세안(ASEAN)과 인디아가 급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산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국내 화학기업들과는 정반대 전략이어서 주목된다.
위기의식 없는 구조조정은 실패
LG경제연구원은 2010년대 후반 발표한 일본기업 구조조정 20년의 교훈 보고서에서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불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신속한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해 20년 장기불황을 초래했다”며 “골든타임을 놓치고 구조조정에 10년 이상을 허비하는 바람에 신성장 분야 개발에도 주력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LG경제연구원은 일본 장기불황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안일한 위기의식을 꼽았다.
장기불황의 계기로 작용한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는 1990년대 초 시작됐지만 일본기업과 관료들은 당시 성장률 1991년 3.4%에 취해 심각성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고 버블은 부동산, 건설, 금융의 문제이고 제조업은 건실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구조조정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992년에는 성장률이 0%대로 떨어졌으나 통상적 경기순환으로 간주했고 소비가 둔화되면서 과잉설비, 과잉인력, 과잉채무 등 3대 과잉문제가 부상했음에도 원가 절감이나 경비 감축 등 통상적 불황대책에 치중한 나머지 선제적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서 경제활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술적인 고려가 부족했던 것도 장기불황을 촉발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메모리반도체는 1999년 히타치(Hitachi)와 NEC가 관련부문을 통합해 NEC히타치메모리(Elpida Memory)를 설립했지만 기술규격이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고 혁신적 기술 개발에 실패한 엘피다메모리는 2012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에게 매각됐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시장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 기술 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샤프(Sharp)는 LCD(Liquid Crystal Display) 등 기존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 2007년 약 3조원을 투자해 60인치 대형 TV용 LCD 공장을 신설했으나 결국 몰락을 부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60인치 TV 수요가 예상보다 적었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세계적인 불황에 직면한 것으로 직격탄을 나렸다.
워크맨 신화에 도취돼 있던 소니(Sony) 역시 워크맨을 카세트형에서 미니디스크(MD)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등 혁신 대신 개량형 개발에 치중함으로써 MP3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 정부가 장기불황에 돌입한 후에도 상당기간 구조조정을 주도하지 못한 것도 패착으로 꼽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불황 조짐이 나타나고 15년이 지난 2006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용도 바뀌어 구조조정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화학기업들은 에틸렌(Ethylene)을 중심으로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 생산능력 감축을 단행함은 물론 범용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로 이전하거나 투자하고 일본에서는 고부가가치화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을 강화함으로써 자동차, 전기‧전자, 반도체, 통신, 배터리용을 중심으로 글로벌 화학소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쇼와덴코, 2020년 LiB 음극재 사업 철수
일본 화학기업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쇼와덴코(Showa Denko)가 구조개혁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서 전기로용 흑연전극 생산능력을 감축하고 일본에서는 합성수지 생산체제 재편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LiB(리튬이온전지)용 음극재 사업에서는 철수할 예정이다.
모리카와 코헤이 쇼와덴코 사장은 2020년 2월 “히타치케미칼(Hitachi Chemical)과의 경영통합을 앞두고 전례 없는 대대적인 사업 매각을 단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쇼와덴코는 2020년 사업 구조개혁 비용으로 총 220억엔을 투입했다.
유럽에서는 경기가 둔화되면서 전로 생산기업들의 재고 조정 움직임이 장기화됨에 따라 흑연전극 판매가 부진한 상태로 독일공장을 폐쇄함으로써 글로벌 생산능력을 21만톤으로 16% 감축할 방침이다. 오스트리아 공장 역시 6개월 동안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건설자재 용도로 공급하는 열경화성 수지 사업도 2021년 6월 말 효고현(Hyogo)의 다츠노(Tatsuno) 공장으로 집약시켰다.
LiB 음극재 사업은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쇼와덴코는 2009년 카본계 음극재 브랜드 SCMG 공급을 시작하며 진출했으나 2020년 말까지 나가노현(Nagano)의 오마치(Omachi) 공장과 함께 중국 위탁생산을 중단했다.
쇼와덴코는 SCMG 외에도 양‧음극재용 도전조제, 양극집전체 카본코트박, 파우치형 LiB 포장소재에 사용하는 알루미늄 라미네이트 필름, 음극용 바인더 등 다양한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LiB 관련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나 SCMG는 사업을 계속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철수를 본격화하고 있다.
히타치 인수로 흑연전극 생산능력도 16% 감축
히타치케미칼 인수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 말까지 실질적으로 경영을 통합한 후 글로벌 기능화학제품 메이저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고 앞으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중심으로 대대적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매각 대상, 시기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쇼와덴코 뿐만 아니라 히타치케미칼 사업도 일부 매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타치케미칼에 대한 주식공개매수(TOB)는 2020년 2월 시작했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각국 규제당국의 독점금지법 심사가 미루어졌으나 결국 승인됐고 회사명을 Showa Denko Materials로 변경했다.
다만, 코로나19 등으로 2020년 영업실적이 악화돼 영업이익은 500억엔으로 전년대비 58.6%, 순이익은 150억엔으로 79.5% 격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개혁에 투입하는 비용을 제외해도 수익성이 대폭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영업실적 악화 요인으로는 우선 흑연전극 사업에서 수요기업들의 재고 조정이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흑연전극을 포함한 무기사업은 2020년 영업이익이 140억엔으로 84.3% 격감했다.
기존에는 재고 조정이 2020년 3분기경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4분기로 밀리면서 150억엔 상당의 영업이익 감소가 불가피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생산능력 감축 등을 통해 흑연전극 판매량이 2020년 15만톤으로 10.0% 정도 줄어들고, 공급단가는 2017년의 20% 수준으로 약세를 나타냈던 2019년에 비해서도 65-70% 추가 하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료 침상코크스(Needle Cokes) 가격이 다소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수익악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도 영업실적 악화요인으로 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 가운데 반도체용 고순도 가스, 기능성 고분자, 알루미늄 압연제품, 기능 부재, LiB 소재 사업의 수익성이 2020년 6월까지 악화돼 전체 영업이익 감소가 불가피했다.
다만, 흑연전극은 2021년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해 스프레드가 개선됨으로써 영업이익 300억엔 수준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주력사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공장 자동화 등 산업기기 시장도 2020년 말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1년부터 5G(제5세대 이동통신) 보급과 CASE(커넥티드·자율주행·공유·전동화) 등 첨단기술이 크게 진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중국 상하이(Shanghai)에 No.2 고순도 가스 공장 건설을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촉매, 산요케미칼과 통합 머터리얼‧솔루션으로 2분화
일본촉매(Nippon Shokubai)는 조직개편에 나섰다.
일본촉매는 산요케미칼(Sanyo Chemical)과 경영통합을 추진하기에 앞서 2020년 4월1일부터 조직체제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요케미칼과는 10월1일 통합 지주회사 신포믹스(Synfomix)를 설립하고 산하에 양사가 들어갈 예정이어서 경영통합 이후의 원활한 융합을 위해 사전에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촉매-산요케미칼은 경영통합 후 기본방침으로 고품질 및 코스트 경쟁력이 우수한 소재를 공급하는 머터리얼즈 부문과 경쟁기업에 없는 독자적인 기능을 공급함으로써 수요기업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솔루션즈 부문을 설치할 방침이다.
머터리얼즈 사업부는 EO(Ethylene Oxide), EG(Ethylene Glycol), 아크릴산, 아크릴산에스테르를 비롯해 양사가 연구개발 및 제조‧판매하고 있는 종이기저귀용 SAP(Super Absorbent Polymer) 등으로 구성된다. 
솔루션즈 사업부는 3개 사업으로 분류하며 인더스트리얼 사업에서는 환경촉매, 콘크리트 혼화제용 폴리머, 영구대전방지제, 윤활유 첨가제 등을 맡고 퍼스널 사업부는 가정용 세정제, 화장품 소재, 의료 관련제품을, 에너지 & 전자 사업부는 배터리용 전해질, 차세대 LiB 등을 취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촉매가 4월1일부터 적용한 조직개편에서는 현재의 EO와 아크릴, 고흡수성 수지, 기능성 화장품, 신에너지‧촉매 등 5개 사업부를 머터리얼즈와 솔루션즈로 재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머터리얼즈 부문은 EO 및 말레인산(Maleic Anhydride)계 기반제품군을 집약한 베이직 머터리얼즈 사업부와 아크릴 사업부, 흡수성수지 사업부 체제로 운영할 방침이다.
솔루션즈 부문은 2개 사업부로 구성하며 인더스트리얼 & 하우스홀드 사업부가 점‧점착제. 페인트용 수지, 세컨더리 AE(Alcohol Ethoxylate), 콘크리트 혼화제용 폴리머, 에틸렌이민(Ethyleneimine) 유도제품 등을 담당한다.
에너지 & 전자 사업부는 LiB용 전해질과 각종 촉매, 광학필름용 아크릴 수지, 기능성 미립자 등을 취급할 방침이다.
MGC, 대대적 조직개편에 연구개발 기능 통합
미츠비시가스케미칼(MGC: Mitsubishi Gas Chemical)도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섰다.
미츠비시가스케미칼은 2020년 4월부터 컴퍼니(사업) 부문과 코포레이트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던 기존의 조직구조를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고 수요기업과 시장의 니즈에 적절‧정확‧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했다.
중기 경영계획에서 중점과제로 설정한 신규사업 창출 및 육성,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 등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의 컴퍼니 제도를 도입한 2000년 이후 20년만에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것으로, 새로운 조직구조에서는 현재 4개로 나누어져 있는 사내 컴퍼니를 개별사업의 특성과 투자 및 속도 등에 맞추어 △기초화학제품 △기능화학제품 2개 사업부문으로 통합할 예정이다.
또 메탄올(Methanol)을 비롯한 천연가스계 화학제품 컴퍼니와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병 원료인 고순도 이소프탈산(PIA: Purified Isophthalic Acid) 등을 생산하는 아로마틱(Aromatics) 화학제품 컴퍼니를 기초화학제품으로 통합한다.
반도체와 LCD(Liquid Crystal Display) 제조용 화학약품 생산을 담당하는 기존 기능화학제품 컴퍼니와 프린트 기판 소재 등을 생산하는 특수기능소재는 새로운 기능화학제품 부문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사업부문 재편을 통해 유연하고 기동적인 투자를 실시하고 사업 간 시너지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업부문도 3월 오사카(Osaka) 지점을 폐점하고 독립(Satellite) 형태로 변경해 효율을 개선할 예정이다.
연구인력은 모두 신설 △연구총괄부문에 집결시킬 예정이다.
그동안 개별 컴퍼니 산하 연구소, 코포레이트 부문의 연구추진부, 2015년 출범한 신규사업 창출 전문조직 신규사업 개발부 등이 연구를 담당했으나 앞으로는 신설부문 1곳에서 연구개발 활동을 수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코포레이트 기능은 △연구총괄 △경영기획 △경영관리 △환경‧생산총괄 등 4개 부문으로 재편하고, 2019년 10월 신설한 CSR 추진실은 그동안 독립조직으로 존재했으나 앞으로는 경영기획 부문 산하의 CSR‧IR부에 둘 예정이다.
2019년 4월 취임한 후지이 마사시 사장은 예전부터 “변화가 극심한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경영체제 확립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예고한 바 있다.
2020년 4월부터 적용한 조직개편안은 1탄에 불과하며 새로운 중기 경영계획을 시작하는 2021년까지 최적화된 조직 방향성에 대한 검토를 계속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윤화 선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