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래스틱 리사이클을 본격화하기도 전에 주도권 다툼이 시작된 모양이다.
중소기업들은 플래스틱 재활용 사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석유화학기업들은 리사이클의 개념부터 재정립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양상이다.
폐플래스틱은 지금까지 수거에서 선별, 재활용까지 중소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나 딱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수거한 폐플래스틱을 대부분 매립 또는 소각 처리할 때는 중소기업이 담당해도 문제가 없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리사이클을 실행할 때는 많은 문제점이 불거질 수 있다.
재활용 대상 폐플래스틱을 수거할 때 오염 정도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하고, 원료 수지별로 분리할 것인지 아니면 분리하지 않고 혼합해 수거할 것인지 기준을 정해야 하며, 매립·소각·재활용 대상이나 비율도 정해야 한다. 모두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폐플래스틱을 모으는 수거단계, 재활용할 플래스틱을 고르는 선별단계, 재활용단계는 플래스틱을 잘게 부수는 물리적 재활용과 촉매·열을 통해 재활용하는 화학적 재활용으로 구분하는 모양이나 단순하게 구분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폐플래스틱 재활용은 수집단계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폐플래스틱을 수거하는 수준이나 선진국들은 수집체계를 고도화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수집하더라도 수지, 형태, 오염도 등을 정밀하게 설계해야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폐기물 분리수거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는 아파트도 현재는 폐PET병을 제외하고는 분리하지 않고 비닐류와 플래스틱류로 구분해 배출하고 있으며 분리 배출한 폐PET병도 혼합 수거함으로써 분리배출의 의미가 퇴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화학섬유 대기업이나 등산복 메이저들이 폐PET병을 재활용해 화학섬유를 생산하고 옷감으로 투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산 폐PET병은 일부에 그치고 대부분을 수입해 투입하는 실정이다. 기술적으로 리사이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진정한 의미에서는 리사이클이 아닌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이다.
폐플래스틱 선별은 원칙적으로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대기업이 참여하더라도 생활폐기물은 중소기업이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별 의미가 없는 이유이다. 일부에서 폐플래스틱을 가정에서 분리수거를 통해 배출하는 생활계, 사업장에서 나오는 시설계, 건설 폐기물에 포함된 건설계로 구분하고 폐플래스틱의 20%를 차지하는 생활계만이라도 중소기업이 선별하고 재활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
석유화학기업들도 안정적으로 폐플래스틱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자동선별이 요구되고, 화학적 재활용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수집체계를 선진화하지 않고는 공염불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
특히, 석유화학기업들은 화학적 리사이클을 위한 기술개발에 어느 수준으로 투자할 것인지, 언제부터 진정한 의미의 리사이클을 본격화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장기 계획도 없이 무조건 중소기업 밥그릇을 뺏어오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글로벌 플래스틱 재활용 시장이 2019년 368억달러에서 2027년 638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밥그릇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으나 폐플래스틱 리사이클은 석유화학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