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산업은 현재 유례없는 외부압력에 직면해 있어 재편이 필수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화학산업은 최근 주요 전방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분야가 100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변혁기를 맞았고, 반도체 용도는 경제안보상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동시에 투자자들은 화학기업에 대해 PBR(주가순자산비율) 향상 등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 석유화학기업들이 수출 포지션으로 전환하며 공급과잉이 심화된 가운데 탄소중립, 경제안보 대응까지 중시되면서 수익 악화 속 투자 필요성이 확대됨에 따라 많은 화학기업들이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해외기업과 경쟁 속에서 PBR 개선, 탄소중립 대응 강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이노베이션 부족에 스페셜리티화 “미흡”
일본은 기초석유화학 부문에서 탄소중립 대응을 위해 원료 및 연료를 전환하고 있다.
일본 석유화학산업은 장기간 신규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으나 최근 기초석유화학 분야의 탄소중립이 중시되며 다운스트림부터 대응에 나섬에 따라 바이오매스 원료 도입 등 새로운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금 조달 필요성이 확대됐고 PBR을 향상시키는 등 매력적인 투자처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일본 석유화학기업들은 과거 내수 충족에 충분한 수준으로 생산능력을 최적화했으나 실제로는 수요 감소 속도가 더욱 빨랐고 저가의 수입제품이 대거 유입되며 공급과잉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종합 석유화학 메이저들을 중심으로 일부 사업 매각 및 재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많아 산업단지 단위로 최적화 방안을 모색하는 곳도 등장하고 있다.
또 대부분 석유화학기업이 범용 탈피 및 스페셜리티화를 지향하고 있으나 실제로 성과를 거둔 사례는 드물다는 평을 받고 있다.
DTC(Deloitte Tohmatsu Consulting)는 일본기업의 성공 사례가 적은 이유로 ①이노베이션 불발 ②글로벌 경쟁에 부적합한 체계 ③스몰 비즈니스 경시 ④소재 플러스 알파가 되는 부가가치 부족을 지적한 바 있다.
반면, 유럽‧미국 메이저들은 ①세계 최초의 신제품을 창출한 후 단번에 시장을 장악하는 대규모 이노베이션 ②우수한 자금 조달력으로 성장시장을 중심으로 대형투자 실시 ③협상력과 신속한 대응을 중시하는 수요기업 밀착형 모델 ④가공‧성형 등 다운스트림 노하우까지 섭렵하는 밸류체인 모델 등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DTC는 일본기업들도 유럽‧미국 메이저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되 기존 생산능력과 결합한다면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스페셜리티도 PBR 개선 압박 “마찬가지”
스페셜리티 화학기업들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PBR 개선 압박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포트폴리오 혁신이 강력히 요구되는 종합 화학 메이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DTC는 범용과 스페셜리티를 가리지 않고 화학기업이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ROIC(투하자본수익률)를 중시하는 경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대다수 스페셜리티 화학기업들은 업무 및 영업실적이 이제야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현장 KPI(중요평가지표)까지 실행하는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이 추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DTC는 최근 일본 화학기업 경영자들의 마인드가 바뀐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0-30년 전까지 상황 유지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 혁신을 지향했던 세대가 경영진이 됐고 그동안 일본기업의 뿌리와도 같았던 가족주의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았던 2010년대에는 포트폴리오 혁신을 위해 해외기업과 대규모 M&A(인수합병)를 하는데 그쳤으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이후 저수익 사업을 매각하거나 경영진을 교체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긍정적인 분위기 전환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엔화 약세 속에서도 일본 사업 재편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스페셜리티 화학기업들의 재편 욕구가 높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석유화학, 생산기업 집약화와 고기능화 시급
일본 석유화학산업은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이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한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생산제품부터 가동률이 하락했으며 기능성 화학제품 또한 자동차의 뒤를 이을 주요 전방산업의 구조 변화와 숙련 기술자 감소 영향으로 재편이 요구되고 있다.
미즈호(Mizuho)은행은 석유화학산업에 대해 기초화학제품 코스트 경쟁력을 높이고 다운스트림 분야인 기능성 화학제품과 전방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 단위로 구조개혁이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 생산제품은 생산기업 수를 2-3사까지 줄여야 하며 일본이 강점을 나타내는 고기능 그레이드 생산 비중을 높이고 가동률을 높이는 동시에 적절한 가격 인상을 실시한다면 수익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진단했다.
다만, 탄소중립과 외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업구조 확립을 위한 투자를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기능성 화학제품 분야에서는 일본 제조업 특유의 아날로그성을 타파하고 시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기술 혁신과 마이너 체인지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며 부가가치와 이익률이 높은 품목에만 집중하는 순차투자형 사업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능성 화학 분야 중에서도 반도체 소재와 배터리 소재 등 성장영역은 전술을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 혁신이나 경쟁 환경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때문으로, 전방산업의 니즈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전방산업과 연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도체 소재는 웨이퍼에 미세회로를 형성하는 전공정 분야에서 1나노미터대로 미세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진행되면서 무어의 법칙이 끝나고 있다.
웨이퍼를 칩에 나누어 조립하는 후공정 분야는 포스트 무어 시대에 대비해 여러 장의 칩을 기판 위에 적층하는 3차원 실장과 기능이 서로 다른 반도체를 조합하는 칩렛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후공정 소재는 요구되는 성능이 다양해 소재끼리 조합이 중요하며 라인업 보완 및 확충으로 차별화하는 방식이 고부가가치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화학소재, 최첨단 분야 투자 “절실”
소재는 기술과 지정학적인 면에서 모두 큰 변환의 시기를 맞은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중요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끝났으나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2년 후면 레임덕이 오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2028년 이후를 주목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다른 중국과는 꾸준히 갈등하고 영토 문제까지 있어 화학기업들은 중요한 경영판단을 뒤로 하고 글로벌 정세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한동안 글로벌리즘이 강세를 나타냈으나 최근 반도체 등 규제가 있는 산업은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글로벌 사우스 등 4개 지역으로 지역화되고 있다.
기술 면에서는 컴퓨테이션이 중반 정도 진행됐으나 일본은 슈퍼 컴퓨터 후가쿠(FuGaKu)와 양자컴퓨터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기반 개발 연구를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 처리장치), QPU(양자 프로세서)를 조합한 퀀텀 센트릭 슈퍼 컴퓨테이션으로 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7년 이후 계산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계산 영역이 확대되며 소재 개발 시뮬레이션과 바이오 제조업에서 주목받고 있는 효소 작용 규명과 물류 최적화, 블록체인 보급 등 기존과는 다른 비연속적인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는 전체 영업이익 중 60% 정도가 최첨단 반도체에서 발생하고 있을 만큼 최첨단 분야는 수익성이 높은 편이며 앞으로 반도체 기기 구조가 FinFET에서 GAA로 바뀌는 기술 전환점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반도체산업의 부활을 맡고 있는 라피더스(Rapidus)는 타이완 위기의 경제적 쇼크 완화와 고수익 영역 진출, 첨단 반도체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속에서 설립 자체가 주목받고 있다.
R&D 투자 위해 주식 평가 중시…
소재화학, 특히 반도체용 소재 분야는 연구개발(R&D) 강화가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반도체 소재는 포토레지스트 시장이 2000억엔 정도로 시장이 작은 편이나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가 요구된다.
일본 싱크탱크 Cdots는 일본 반도체산업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 뿐만 아니라 관련기업 스스로가 서플라이체인을 강화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기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와 장치 모두 현재 위치에 안주해서는 안되며 경제안보상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투자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또 소재 생산기업들은 규모화 뿐만 아니라 재편이나 소재를 모아 복합화하기 위해 PER(주가수익률) 관점에서 주식 시장에서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사업모델 혁신도 필요하며 소재 포트폴리오 확장에만 집중하지 말고 디지털 기술 활용, 서비스 부문과의 통합, 기존과 다른 수준의 파트너 연계를 바탕으로 넓은 시야를 갖춘 전략을 세우고 세계적으로 필수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