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폴이 2024년 탄소세를 5배로 인상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석유화학단지를 구축한 싱가폴은 탈탄소화를 목표로 단계적으로 세율을 높이고 있다.
다만, 싱가폴 화학산업은 중국산 저가제품이 유입되면서 60년 이상 공장을 가동한 영국 쉘(Shell)이 자산 매각을 결정할 정도로 수익성 악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원료·에너지 전환 등 대응을 요구받는 가운데 범용제품 대신 기능성 화학제품 투자를 확대하는 등 화학산업의 중심이 특수 화학제품으로 전환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싱가폴, 탄소세 확대로 범용 생산 철수
싱가폴은 2019년부터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기존 세율은 이산화탄소(CO2) 환산 기준 온실가스(GHG) 배출량 톤당 5싱가폴달러(SGD)에 불과했으나 2024년 25SGD로 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대상은 배출량이 이산화탄소 환산 기준 2만5000톤 이상인 사업자이다.
싱가폴 국가기후변화사무국(NCCS)에 따르면, 약 50개 공장이 과세대상이 전체 배출량의 80%에 달한다. 세율은 2026년 45SGD, 2030년 50-80SGD로 인상 예정이다.
제조업, 발전, 폐기물 처리, 수처리 사업이 과세대상이다. 에너지, 화학기업도 포함되며 화석자원을 원료로 사용하는 대규모 정유공장과 석유화학공장 일부도 대상에 포함돼 탄소세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쉘은 세율 인상 등 제도 개정이 결정된 이듬해인 2023년 정유공장과 석유화학 설비 매각을 공표하면서 사실상 철수를 선언했다. 쉘의 자산은 인도네시아 메이저 Chandra Asri Petrochemical과 스위스 자원 무역기업 Glencore의 합작법인이 인수할 예정이다.
아시아 석유화학 시장에서 생산능력과 가격에서 우위에 있는 중국기업들을 필두로 경쟁기업들이 증가한 가운데 탄소세를 도입한 싱가폴에서는 화학기업들이 범용화학제품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서 철수를 결정했다.
일본 덴카(Denka)는 2020년 PS(Polystyrene) 공급을 종료했으며, 미쓰이케미칼(Mitsui Chemicals)은 2023년 페놀(Phenol) 사업을 영국 이네오스(Ineos)에게 매각했다.
DIC 역시 2023년 플래스틱 원료 등으로 사용되는 PTBP(4-Tertiary Butylphenol) 생산에서 철수했고,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은 2024년 MMA(Methyl Methacrylate), PMMA(Polymethyl Methacrylate) 생산을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싱가폴 정부는 탈탄소화를 앞세워 일률적인 사업 철수를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싱가폴 정부는 2022년 탄소세율을 개정하면서 생산제품이 수출형이고 싱가폴의 성장·발전과 복리에 기여하는 경제적,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자에게는 공제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명문화했으며, 경제적 기여도와 탈탄소화 노력 등을 고려한 공제를 실시하고 있어 공제받는데 성공하면 실질적 부담을 세율 인상 이전과 가까운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산업, 저탄소화로 돌파구 모색
석유정제와 석유화학산업은 리콴유 초대 수상이 강력하게 육성한 싱가폴의 국가사업으로 싱가폴은 사업환경이 어려워진 석유·화학기업을 중심으로 경쟁력 유지와 저탄소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규모 산업단지를 바탕으로 싱가폴 석유화학 1인자로 평가되는 스미토모케미칼은 NCC(Naphtha Cracking Center)를 가동하는 자회사 PCS와 범용 플래스틱을 공급하는 TPC(The Polyolefin Company)가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PCS는 LPG(액화석유가스) 원료 이용을 추진하고 있다. 프로판(Propane)에 이어 부탄(Butane) 이용을 시작했으며 싱가폴에 생산기지를 보유한 네스테(Neste)로부터 바이오 나프타를 공급받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TPC 역시 저탄소화의 일환으로 PP(Polypropylene) 생산공정에서 플레어스택(Flare Stack)을 통해 제거하는 올레핀(Olefin)을 감축 및 재이용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는 PPE(Polyphenylene Ether) 공장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전력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를 통한 감축을 목표로 그룹에서 실시하는 생산현장의 DX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2023년 3명, 2024년 2명의 현지인력을 참여시켰고 2023년에는 대폭적인 코스트다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폴은 앞으로도 민·관 투트랙으로 에너지 저탄소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싱가폴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세웠으며 수소로 발전용 연료의 최대 50%를 충당하는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발전용 연료와 선박연료로 암모니아(Ammonia)에 주목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는 수소발전소와 공급망 정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 노력과 공장의 저탄소화 및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도 형성되고 있다.
오사카가스(Osaka Gas)는 수요기업의 탄소세 대책으로 중유에서 LNG(액화천연가스)로 연료를 전환하고 열병합, 태양광발전 등을 종합한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으며, 수소·암모니아 등 차세대 에너지 관련 설비와 타이완 LNG 수용설비 등의 노하우를 지닌 JFE엔지니어링(JFE Engineering)도 싱가폴의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 기능성 화학제품 전환 본격화
화학 메이저들은 기능성 화학제품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싱가폴은 오랫동안 동남아시아 석유화학산업을 선도했으나 탄소세 도입을 비롯한 탈탄소화와 시장구조 변화의 영향으로 범용 화학제품 생산이 감소하고 있다.
반면, 고도성장을 이어가는 동남아시아와 인디아에 가까우면서 우수한 인프라와 물류기능을 갖추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 차별화된 화학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허브로 평가받고 있다.
덴카는 PS 사업에서 범용화학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2021년 LCD(Liquid Crystal Display) TV와 PC 모니터용 광학부품, 화장품 용기용 등에 대응하기 위해 MS(Methyl Methacrylate-Styrene) 수지 생산능력을 100% 확대했다.
미쓰이케미칼은 범용 페놀 생산을 중단했으며 2026년 3월까지 고기능 엘라스토머(Elastomer) Tafmer 증설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플래스틱 개질제로 사용하는 Tafmer는 태양전지를 시작으로 포장재, 자동차 부품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싱가폴 사업장이 전세계로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쿠라레(Kuraray)는 2021년 PVA(Polyvinyl Alchol) 생산능력을 확대했으며 2026년 말 EVOH(Ethylene Vinyl Alcohol) 신규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쿠라레의 EVOH 수지는 우수한 가스배리어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식품포장도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쿠라레는 싱가폴을 기점으로 동남아시아에 집적된 식품가공과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고품질 식품 소비 증가 수요를 공략하는 동시에 성장 시장인 인디아 수요를 흡수할 방침이며 PVC(Polyvinyl Chloride) 중합 안정제용 PVA 증설도 검토하고 있다.
스미토모세이카(Sumitomo Seika)는 종이 기저귀용 SAP(Super Absorbent Polymer)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며 2025년 증설설비를 가동할 예정이다.
사빅(Sabic) 역시 자동차, 전자, 의료 분야에서 사용하는 PEI(Polyetherimide) 공장을 신규 가동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기능성 화학제품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공장에서 광범위한 지역으로 공급하며 생산규모 때문에 싱가폴 정부의 탄소세 과세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원료인 기초화학제품을 과세대상으로부터 조달하고 있어 간접적으로 탄소세 인상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탄소세 영향에도 불구하고 싱가폴에서 기능성 화학제품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해상물류의 허브라는 점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한 관세 대응의 이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노하우의 결정체로 평가되는 기능성 화학제품의 지식재산권(IP) 보호 측면에서도 메리트가 크며, 싱가폴 정부는 라이선스에 대한 우대조치도 제공하고 있다.
싱가폴은 앞으로 제조업과 소비시장 확대가 확실시되는 인디아에 대한 접근성에서도 강점을 지니고 있다.
싱가폴은 인디아와 양자간 무역협정을 비롯해 아세안(ASEAN)을 통한 다자간 무역협정을 맺고 있으며 반덤핑관세와 인증제도 등을 활용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인디아의 움직임을 고려할 때 관세 우대는 큰 의미를 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제품 유입도 제한적이어서 시장 개척 여지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MA(Methyl Acrylate)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도아고세이(Toa Gosei)는 섬유, 플래스틱, 페인트, 고무, 점·접착제, 의·농약 원료로 인디아에 MA를 공급할 방침이다.
자동차 타이어용 합성고무를 공급하는 제온(Zeon)은 2024년 인디아에 합성고무 기술 지원기능을 도입했다. 또 2026년 연비성능과 내마모성을 개선한 새로운 합성고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용액중합 SSBR(Solution Polymerized Styrene Butadiene Rubber)과 PPE(Polyphenylene Ether)를 공급하는 아사히카세이는 생산부터 기술 서비스, 영업, 연구개발(R&D)에 이르는 모든 기능을 싱가폴에 두고 동남아시아와 인디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윤우성 선임기자: yys@chemlocus.com)
<화학저널 2025년 0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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