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프로젝트가 세계 경제침체 장기화로 중단 위기에 놓였다.
세계 온실가스 평균 농도는 2023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기후변화로 사람들의 건강, 생존에 대한 위협이 확대된 가운데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 역시 직접적‧간접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키고 있다.
유엔(UN) 산하 유엔환경계획(UNEP)은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세계 각국이 단결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섭씨 1.5도 미만으로 조정해야 기후변화에 따른 타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현재 상태로는 오히려 최대 3.1도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기후변화 전략을 모두 철회할 가능성이 부상해 산업·환경·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움직임이 주목된다.
온실가스, 2023년 사상 최고농도 기록
세계기상기구(WMO)는 세계 온실가스 평균 농도가 2023년 사상 최고치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구상에 2023년과 비슷한 수준의 온실가스 농도가 나타났던 것은 300만-500만년 전이나 당시에는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2-3도 높았고 해수면 높이도 10-20미터 높았다.
온실가스는 당장 넷제로에 성공해도 한 번 배출된 후부터 장기간 대기중에 머무르기 때문에 현재 기온은 앞으로 수십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이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며 감염병의 확산 패턴이 급변하거나 식량, 수자원 변화가 일어나고 최근에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 악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연구 사업 란셋 카운트다운(Lancet Countdown)은 2024년 10월30일 급속한 기후 변화로 건강, 생존에 대한 위협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확대됐다고 경고한 바 있다.
란셋 카운트다운에 따르면, 2023년에는 영유아와 65세 이상 노인 1인당 평균 13.8일 동안 폭염 피해를 입으면서 사상 최대수준을 기록했고 65세 이상 노인이 고온장애로 사망할 확률은 1990년대 대비 2.67배 상승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 전세계 토지 중 48% 정도는 적어도 1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을 겪었으며 1951년 이래 2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이미 1.5도 가까이 상승했으며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기후시스템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소규모‧대규모 변화를 발생시키는 티핑포인트(전환점)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1.5도 미만으로 조정하는 움직임이 중요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극 얼음이 융해되며 추가적인 온난화를 야기하는 악순환, 해류 변화에 따른 기후변화나 영구동토층 융해와 함께 메탄(Methane)이 대량 방출되는 문제 등이 우려되고 있다.
UNEP가 최신 자료에서 전세계 기온이 21세기 중 2.6-3.1도 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함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유럽, 일부 저탄소 프로젝트 “중단”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기타 지원 조치를 통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대규모 및 야심적 프로젝트를 장려했으나 대부분 최종투자결정(FID)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FID를 마친 프로젝트들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쉘(Shell)은 2024년 7월 초 네덜란드 로테르담(Rotterdam)에서 진행하고 있던 바이오 연료 82만톤 플랜트 건설 공사를 중단했다.
2021년 FID를 거친 프로젝트로 완공되면 유럽에서 폐기물 베이스 SAF(지속가능한 항공연료)와 재생가능 디젤을 생산하는 최대 사업장이 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최근 시황을 고려해 공사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공사 재개가 어려워 최근 작업자 수를 줄이거나 작업 속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코스트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BP는 세계 5곳에서 SAF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2024년 6월 독일 링겐(Lingen)과 미국 체리포인트(Cherry Point)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저탄소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원상태로 돌아가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Vertex Energy는 최근 앨라바마 모빌(Mobile) 정유공장에서 재전환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재생가능 디젤 생산에 이용했던 수소화 분해장치를 원유 처리공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감압경유유분(VGO)용으로 최적화하고 휘발유와 디젤 생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빌 정유공장은 2022년 쉘로부터 인수했으며 1억달러 상당을 투입해 수소화 분해장치를 재생가능 디젤 생산용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재생가능 디젤 대신 기존 연료를 생산하는 편이 수익 유지에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1년만에 다시 화석연료 생산기지로 돌려놓았다.
모빌 정유공장은 2024년 1분기 재생가능 디젤 생산에서 105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으며, Vertex Energy는 9월 텍사스 재판소에 파산을 신청했다.
네스테(Neste)는 핀란드 포르보(Porvoo) 정유공장에서 재생가능 수소를 생산하는 전해조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2024년 중단을 결정했다.
2023년 5월부터 진행한 프로젝트로 기본적인 엔지니어링을 마쳤으나 시장 환경과 재정 상황이 좋지 않고 핀란드 당국이 규제할 가능성이 있어 120MW 전해조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중단을 결정했다. 재생가능 수소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탄소 배출 급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저해하고 있다.
유럽 전문가 그룹과 우크라이나 환경보호 및 천연자원부가 2024년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2년 사이 배출된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 환산 최소 1억7500만톤으로 네덜란드의 연간 배출량에 맞먹는 수준으로 파악된다.
무기 제조와 탄약 사용, 군대 이동 등 전쟁 수행 과정에서 직접 배출된 배출량이 약 30%에 달했고 간접 배출량은 공격 후 화재, 에너지 인프라 파괴에 따른 석유제품 누출, 난민 이동, 항공기의 전지 우회, 파괴된 건물 복원 등에서 발생했다.
여기에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 폭등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 정부가 소비자와 관련기업들을 지원한 결과 화석연료 보조금이 크게 증가했고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저해하게 된 것도 간접적인 영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규제, 보조금 등 공적지원이 없으면 저탄소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은 우려 요소가 되고 있다.
탈탄소화를 주도했던 유럽에서는 유럽위원회의 우르슬라 폰데라이언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드라기 보고서를 작성했다.
드라기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탈탄소화를 위해 다른 국가 대비 야심찬 목표를 내걸고 있으나 단기 코스트 추가가 불가피하고 연간 최저 7500억유로에서 8000억유로의 공공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COP, 기후자금 두고 선진국-개발도상국 이견
2024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Baku)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회의(COP29)가 개최돼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에게 기후자금을 요구하는 사안이 최대 쟁점이 됐다.
기후자금은 개발도상국이 완화, 적응 등 기후변화 대책을 실시하기 위한 자금으로, 기후변화는 선진국이 가해자, 개발도상국이 피해자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개발도상국이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과거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선진국이 부담하라는 취지이다.
2009년 코펜하겐(Copenhagen) 합의에서 결정된 현행 기후자금은 2025년까지 계속되지만 2025년 이후 신규 합동수치목표(NCQG)를 2024년 중 COP29에서 최종 결정해야 했다.
COP29는 회기를 2일 연장해 11월24일 개막했고 2035년까지 기후자금을 최소 당초 목표의 3배에 해당하는 3000억달러로 늘리는데 합의했다.
COP26과 COP27 의장의 요청으로 설립됐던 자금 관련 국제적 전문가 그룹이 파리(Paris) 협정 실시에 필요한 자금으로 2030년까지 최소 3000억달러, 2035년까지 390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의견 차이가 크며 미국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미국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임기 중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바 있으며 2025년 1월20일 다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임기 시작과 함께 탈퇴를 재차 선언했다.
그러나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발표한 후 즉각 설립된 미국의 비정부 행동연합체 We are still in이 글로벌기업 총수와 주지사, 시장 등의 지지를 얻으면서 탈탄소화를 위한 비정부 차원의 움직임을 시작했고 COP29 합의에서도 모든 나라와 기관이 협력해 공적자금 뿐만 아니라 민간자금까지 포함해 개발도상국에게 2035년까지 최소 1조3000억달러를 지원하자는 문언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사례와 같은 민간 차원의 움직임에 대한 기대가 확대되고 있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
표, 그래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화학저널 2025년 06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