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말 들려온 Dow Chemical과 DuPont의 통합 및 사업분할 소식은 앞으로 화학산업이 맞이할 새로운 국면을 상징하고 있다.
화학산업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에너지 정세 및 세계경제 기조가 변함에 따라 기존 사업모델의 개선 혹은 근본적 수정 등 재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국내기업들도 LG화학이 동부팜한농을 인수해 농약·종자 등 농화학 분야에 진출하고, SK케미칼이 백신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등 사업모델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있다.
20세기 화학산업을 주도하던 유럽과 미국의 화학 메이저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약 25년 동안 메가트렌드와 기술혁신에 따라 핵심사업의 성장기반을 다지고 성숙사업은 재구축·처분하는 등 대대적인 재편을 실시한 바 있다.
특히, 의약·농업·바이오 등 생명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해 21세기형 사업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ICI,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개척자
화학산업은 1940-1950년대 석유화학과 고분자를 중심으로 시작됐으며 1960년대에 성숙기에 접어들었으나 1970년대 들어 2번의 오일쇼크를 겪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세계경기가 침체에 빠지며 유럽 및 미국 화학기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포트폴리오 수정에 나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구조적 침체에 빠진 유럽 화학산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설비 페쇄 및 사업교환을 중심으로 한 사업재편과 합리화를 추진했다.
프랑스, 이태리 화학기업들은 국영화를 통한 과감한 구조재편을 추진했으며, 영국 ICI는 자체 개발한 고압 PE(Polyethylene) 사업을 BP의 PVC(Polyvinyl Chloride) 사업과 교환으로 정리했고, 폴리에스터(Polyester) 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ICI의 사업개혁을 진두지휘했던 John Harvey-Jones 회장은 전통적인 세부사업 구분을 타파하고 의약·농약 등 고부가·고성장 부문, CA(Chlor-Alkali), 도료, 화약, 석유, 비료 등을 담당하는 안정수익원, 섬유, 석유화학, 플래스틱, 염료 등 문제 사업분야로 구분하고 전략적 재배치를 추진했다.
당시 유전자 공학이 발달하고 초기제품이 상업화됨에 따라 생명과학 붐이 일어나 대부분의 화학 메이저들은 의약·농약 분야에 관심을 나타냈으며, ICI는 1960년대부터 심장병 치료제와 제초제 분야에서 세계적인 히트제품을 보유하는 등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ICI는 미국기업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5년 Beatrice Chemical의 복합소재 및 각종 스페셜티 화학사업을 인수했고, Garst Seed의 종묘 사업도 가져왔다. 1986년 도료 메이저 Glidden를 인수한데 이어 1987년에는 Stauffer Chemical의 농약 사업을 인수했다.
하지만, M&A 기획 및 실행을 추진한 Denys Henderson 경이 1987년 ICI 회장직을 맡으며 새로운 개혁에 착수했고 1991년 초에는 7개 국제사업부와 지역사업부로 재편하는 내용을 포함한 구조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1987년 M&A로 정평이 난 Hanson이 ICI의 지분을 2.8% 취득하고 ICI를 인수함에 따라 의약 등 고수익부문을 조금씩 매각해 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확산됐다.
하지만, ICI는 선제적으로 나서 1992년 7월 더욱 강화된 분할 구상을 정식 발표했으며 1993년 6월 의약, 농약·종자, 스페셜티 등 3개 사업부는 Zeneca로 분사하고 도료, 소재, 화약, 공업화학, 지역사업 등 5개 사업을 분리해 ICI를 출범시켰다.
Zeneca는 1993년 매출이 44억파운드로 84억파운드에 달했던 ICI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지만 영업이익은 7억파운드로 ICI의 2배를 넘었다.
시가총액은 1992년 76억파운드에서 1993년 말에는 분할한 양사 합계 137억파운드로 확대됐으며 ICI의 과감한 구조재편은 20세기형 종합화학기업으로 변신한 선례를 남겼다.
이후 Zeneca는 세계적으로 의약 메이저들의 통합 분위기가 고조된 1998년 말 스웨덴 Astra와 합병해 AstraZeneca로 출범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Astra의 위산분비억제제 Losec과 Zeneca의 AEC 억제제 Zestrill 등 대형 의약품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후속 신약의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작업이 급선무로 대두됐다.
이에 따라 Zeneca는 농약·종자 사업을 스위스 Novartis의 관련사업과 통합해 Sygenta로 분리했고, 스페셜티는 펀드기업 Avecia에게 일괄 매각했다.
ICI는 1993년 PA(Polyamide) 사업을 DuPont의 아크릴수지(Acrylic Resin) 사업과 교환하며 섬유 사업에서 완전 철수했고, 1997년에는 Unilever의 스페셜티 사업을 80억달러에 인수했으며 DuPont에게 폴리에스터 체인과 이산화티타늄(TiO2: Titanium Dioxide) 사업을 매각하는 등 도료 이외 사업은 전면 처분을 추진했다.
독점금지법상 인가를 받지 못하던 TiO2는 석유화학, 폴리우레탄(Polyurethane) 등과 함께 미국의 Huntsman에게, 염소제품 메이저 EVC는 Ineos에게 각각 매각했다
2006년에는 Unilever로부터 취득한 유지기업 Uniqema와 향료 생산기업 Quest를 매각했으며 2007년에는 남아있던 도료 사업과 National Starch의 전분, 접착제, 전자소재 사업을 AkzoNobel에게 매각하는데 합의함으로써 2008년 1월 이후 화학산업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AkzoNobel은 ICI 인수에 앞서 의약품 자회사인 Organon Biosciences를 미국 Schreing Plough에게 매각하고 의약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