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코(Saudi Aramco)가 석유화학 메이저 사빅(Sabic)을 인수함으로써 글로벌 최대의 석유·화학기업으로 부상한다.
아람코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Public Investment Fund(PIF)가 보유하고 있는 사빅의 지분 70%를 2591억2500만리얄(약 711억7400만달러)에 매입할 계획이다.
아람코에게 사빅 지분을 매각한 PIF는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국부펀드로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경제개혁 계획 비전(Vision) 2030의 자금줄로 알려져 있다.
비전 2030은 그동안 석유에 의존해온 사우디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 종교적 이유로 부진했던 관광·레저, 엔터테인먼트, 지식기반 산업, 부동산 개발 등에 대규모 투자한다는 중·장기 계획이다.
아람코는 사빅을 인수함으로써 석유 개발부터 석유정제, 석유화학을 수직계열화하는 거대 공룡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아람코는 2030년대를 정점으로 석유 수요가 감소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석유자원이 창출하는 가치의 유지·향상을 위해 사우디산 원유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30년대까지 글로벌 정제능력을 일일 490만배럴에서 800만-1000만배럴로 확대하고 200만-300만배럴을 석유화학제품 생산에 투입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다운스트림인 석유화학 사업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사빅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는 석유화학제품 생산능력이 총 1700만톤에 달하고 있으나 기술 및 노하우를 보유한 해외기업과의 합작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 사빅은 유럽·미국을 중심으로 화학사업을 인수하면서 기초화학제품, 폴리올레핀(Polyolefin), PC(Polycarbonate) 등 석유화학제품 생산능력이 총 6200만톤에 달하는 석유화학 메이저로 성장했다.
아람코는 사빅을 편입함으로써 부족한 다운스트림 사업 노하우를 통합해 업스트림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양사가 사우디에서 계획하고 있는 원유로부터 직접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도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람코의 사빅 인수 프로젝트는 탈석유를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 정부의 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PIF는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비석유산업을 육성하는 사우디 비전 2030 등 내수경제 활성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디지털, 바이오 등 9개 성장분야를 육성하겠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산업도시계획 NEOM에 대한 자금조달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PIF는 2018년부터 외부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는 등 자금조달을 서두르고 있으며 사빅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도 비석유산업 육성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쉘(Shell), 엑손모빌(ExxonMobil)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은 대부분 업스트림인 유전 개발부터 석유정제, 석유화학까지를 일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2001년 석유 및 화학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이노펙(Sinopec)과 CNPC에게 석유 및 석유화학 사업을 집약하는 대규모 구조재편을 단행한 바 있다.
최근에는 석유 수요 감소가 현실화됨에 따라 석유정제기업이 석유화학 사업에 참여하거나 석유화학 사업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아람코의 사빅 인수 역시 석유와 석유화학을 일체화하는 흐름 중 하나로 파악되고 있어 분할 운영하고 있는 다른 산유국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아람코는 국내에서도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로 올라서는 등 정유산업에 대한 장악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오일뱅크 지분 17.0%를 아람코에게 약 1조4000억원에 매각하고 2.9%의 지분에 대한 콜옵션도 아람코에 부여하는 계약을 최근 체결했으며, 아람코가 콜옵션을 행사하면 지분을 최대 19.9%까지 확보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지분 74.1%를 보유하며 여전히 현대오일뱅크의 최대주주로 자리하고 있으나, 아람코가 2대 주주로 올라서며 현대오일뱅크 이사회 의석을 확보한 만큼 경영에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가 2대 주주로 부상함에 따라 앞으로 아람코로부터 도입하는 원유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아람코의 자회사인 에쓰오일은 최대주주인 아람코로부터 20년 단위의 계약을 맺고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원유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1년 단위로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아람코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종합화학은 2015년 사빅과 합작으로 메탈로센(Metallocene) PE(Polyethylene) 넥슬렌 생산을 목적으로 Sabic-SK 넥슬렌을 설립해 울산 플랜트를 가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