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국영 아람코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막대한 원유 매장량을 바탕으로 세계 석유 시장을 뒤흔들더니 사빅을 인수하면서 석유화학까지 장악할 태세이다. 정유․석유화학 일체화 투자도 위협적이다.
여기에 중국을 중심으로 정유․화학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어 머지않아 아시아 석유화학 시장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투자는 빈살만 왕세자가 미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확대를 거듭하고 있으나,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생사를 좌우할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람코가 석유화학 시장의 위협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원유에서 출발해 정유, 석유화학제품까지 일관생산하는 COTC(Crude Oil to Chemicals)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천연가스인 에탄을 원료로 사용해 나프타에 비해 원료 코스트가 크게 낮은 가운데 COTC 프로세스까지 상업화하면 석유화학 시장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 국제유가 배럴당 70-80달러를 기준으로 나프타는 톤당 800-900달러에 달하는 반면 에탄은 200-300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COTC 프로세스는 에틸렌 생산단가가 톤당 100-200달러 수준으로 에탄 베이스 200-300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나프타 베이스 700-800달러는 물론 중국의 석탄 베이스 CTC(Coal to Chemical) 600-700달러보다도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아람코가 COTC를 상업화한 가운데 중국에 투자한 나프타 또는 에탄 베이스 공세를 본격화하면 나프타 베이스가 주력인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아람코는 130조원 이상을 투자해 중동에 COTC 플랜트 8개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에틸렌 생산능력은 총 1123만톤으로 2024년 기준 국내 생산능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우디 메디나 소재 COTC 플랜트는 2025년 완공한 후 2026년부터 상업가동하고, 울산에 건설하고 있는 에쓰오일의 COTC 플랜트도 2026년에는 상업가동이 가능하며, 쿠웨이트 국영 KIPIC와 합작한 플랜트는 2027년 가동 예정이다.
중국도 석유화학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국영 사이노펙을 중심으로 아람코는 물론 쉘, 엑손모빌, 바스프 등과 손잡고 석유화학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에틸렌 생산능력을 2022년 4600만톤, 2023년 5200만톤, 2024년 6100만톤으로 확대함으로써 에틸렌 자급률을 120%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의 견제에 부동산 버블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예상대로 늘어나지 않자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석유화학제품 현물가격을 끌어내림으로써 한국․일본 석유화학기업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미국 역시 에탄 베이스 석유화학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 붐을 타고 에탄과 LPG 베이스 석유화학 투자를 적극화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을 거부하고 원유 생산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천명했으며 곧이어 석유화학 투자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아람코는 미국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구체화하지는 않았으나 미국 화학기업들과 석유화학 합작투자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미국산 PE, PVC가 아시아 시장에 대량 밀려들 것이 자명하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중국, 미국, 중동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람코와의 협력을 통한 구조재편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