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화학인들이 꿈에 그리는 노벨 화학상 수상이 2025년에도 물 건너갔다.
2025년 노벨 화학상은 금속-유기 골격체(MOF) 분자 구조를 규명한 기타가와 스스무 일본 교토대학교 교수, 리처드 롭슨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학교 교수, 오마르 M. 야기 미국 UC 버클리대학교 교수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MOF는 금속 이온을 유기 분자로 연결해 만든 결정 구조로 내부에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있어 다른 분자들이 드나들 수 있으며, MOF를 활용해 메마른 사막의 공기에서 수분을 채취한 후 물로 만들고 공기 중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하는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여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롭슨 교수는 1989년 구리 양이온을 중심으로 다이아몬드와 비슷하지만 빈 공간이 많은 MOF 구조를 만들었으나 구조가 불안정해 쉽게 붕괴하는 단점은 해결하지 못했다. 이후 기타가와 교수가 MOF 구조에 기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MOF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야기 교수는 튼튼하고 안정적인 MOF를 제조할 수 있는 틀 마련에 성공했다.
이후 화학자들이 수만 종의 MOF를 만들었고 일부는 탄소 포집, 물 부족 해결, 환경 정화와 같은 인류 난제 해결에 이용하고 있다.
노벨 화학상은 지금까지 없는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지구상 존재하는 새로운 화학물질을 발견해 산업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을 때 수여하고 있다. 3인이 공동 수상한 MOF도 기초 과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물질을 제조할 수 있도록 했고, 인류 난제 해결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가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노벨 과학상(화학상·물리학상·생리의학상)을 단 한 명도 수상하지 못한 반면, 일본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무려 12명에 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일본 화학산업의 성장·발전이 뚜렷이 대비되는 현상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 단적으로 한국은 양적 팽창주의를 지향하면서 범용 위주로 생산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일찍부터 양적 팽창을 지양하고 질적 성장을 추구해왔다는 점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한화토탈, 코오롱, 효성, DL케미칼 등 국내 화학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대기업들은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한 나머지 대량 사용되는 범용제품 생산에 그치고 있다. 물론 코오롱, 효성, 삼양사 등은 양적 팽창에만 매몰되지 않고 일부 차별화를 시도해 성공한 사례도 있으나 주류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반면, 일본 화학기업들은 미쯔비시케미칼, 미쓰이케미칼, 스미토모케미칼, 아사히가세이, 레조낙, 도레이 등 메이저를 중심으로 1980년대 초까지 석유화학 확대에 집중하면서도 정밀·스페셜티 화학 연구개발을 병행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자동차, 전자, 반도체, 배터리 등 미래 산업 소재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일본이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정밀·스페셜티로 발전시킨 반면, 한국은 응용과학에 집중해 기초과학이 약한 한계가 노벨 과학상 수상에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도 기초과학이 강한 것으로 평가돼 머지않아 노벨 과학상을 대거 수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학기업의 투자·연구개발 방향이 자체 연구소의 연구개발에 그치지 않고 대학교·국가연구기관들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글로벌 첨단소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화와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과 정제룰 육성해 미국에 대항하듯이 일본은 첨단소재 공급을 장악하면서 중국과의 대결에 나설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초과학이 강해야 노벨 화학상도 탈 수 있고 화학산업도 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