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평가·등록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강화하면서 화학공장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률만 강화해서는 아니 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이 밥그릇 챙기는 차원에서 법규를 애매하게 규정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신고에 과다한 비용이 들도록 한 결과일 것이다. 화평법은 대표적으로 중간에 컨설팅기업을 내세워 비용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화학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화평법 및 화관법 적용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일부에 그쳐 대세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하지만, 한화토탈의 유증기 유출 사고를 비롯해 강릉 수소연료전지 관련 수소탱크 폭발사고, 창원의 화학공장 화재사고 등 화학공장을 중심으로 한 화재·폭발 및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화평법 및 화관법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울산단지 및 반월공단은 건설한 지 50-60년이 넘어 설비가 극히 노후화됐다는 측면에서 화학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여수단지도 40년이 넘어 위험한 상태이며, 대산단지는 1980년대부터 들어서 대형 단지 중에서는 가장 최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화학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화학사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하청기업 노동자들이 주로 사고에 내몰리고 있고 목숨을 잃는 비율도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2003-2013년 산업재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10년간 유해화학물질 중독·질식, 폭발·파열, 화재 등 각종 화학물질 관련사고로 숨진 노동자가 1045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 1만1098명의 9.4%에 달해 해마다 95명이 화학물질 사고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로 숨진 6명 모두가 하청기업 소속이었고, SK하이닉스 가스누출 사고로 3명, LG디스플레이 가스누출 사고로 3명이 숨졌는데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2014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가스누출 사고, 2013년 현대제철 당진공장 및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가스누출 사고 사망자도 모두 하청기업 노동자이다.
노동계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비전문적인 하도급 구조와 공사기간 단축에 따른 화학물질 안전관리 소홀, 설비 노후화로 화학물질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하청기업에 위험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하청 노동자들한테는 관련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행정안전부도 2016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일어난 화학사고 157건 가운데 작업자 부주의 33%, 교육·훈련 미흡 23%, 관리·감독 소홀 22%, 시설 노후화 14%로 파악하고 화학물질의 종류, 사고유형, 노출범위 등 신고기준을 명확히 규정할 방침이다. 일반 건설현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업자 부주의나 교육·훈련 미흡은 하청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공사기간 단축과 업무의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화학사고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명시해 비전문적인 하청구조를 근절할 필요성이 있고, 설비가 노후화돼 사고 위험성이 높은 화학공장에 대해서는 실태 점검을 의무화해 사고를 예방할 필요성이 있다.
화학공장 설비가 노후화된 가운데 하청구조가 일반화돼 있고 근무형태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점은 화학사고가 다발할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의식구조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