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를 둘러싼 지형이 나날이 급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19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화학소재 3종의 수출을 규제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 생산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2021년 들어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재해와 화재 사고가 겹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 걸프 연안에 몰아닥친 기록적인 한파로 삼성전자의 텍사스 오스틴 공장이 한달 이상 가동을 중단하고 있고, 일본 르네사스 공장은 지진과 화재로 7월까지 정상화가 어려운 상태이며,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메이저인 타이완 TSMC 공장에서도 3월31일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가 연구개발 및 시험양산 공장에 그쳐 반도체 생산 차질로 직결되지는 않아 다행이나 자동차를 비롯해 가전·IT 생산기업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어 자동차 생산 차질과는 거리가 있으나 르네사스나 TSMC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장악력이 높아 자동차기업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반도체 공급이 차질을 빚음에 따라 울산1공장 가동을 4월7-14일 중단하고, 한국GM은 2월부터 부평2공장을 50% 수준으로 가동하고 있는 가운데 4월에도 가동을 정상화하기 어려우며 7월 이후에는 생산물량조차 배정받지 못해 구조조정이나 공장 폐쇄가 우려되고 있다. 물론 반도체 공급 차질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스마트폰 역시 2020년 하반기부터 신제품 출시 경쟁이 벌어지며 2021년 시장이 13억6000만대로 2020년에 비해 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반도체 수요초과 현상이 빚어지고 있고, 가전 역시 코로나19 장기화로 TV, 컴퓨터 등 교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로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이 붕괴되고 있고, 반도체 생산기업들이 수익성이 낮은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스마트폰, 가전용으로 전환했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장기적으로도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현대모비스가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부문을 인수해 자동차용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이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메모리에 그칠 뿐 시스템 반도체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반도체 수출이 2021년 3월 95억1000만달러로 2020년 3월 87억6000만달러에 비해 8.6% 증가했다고 내세울 뿐 정착 문제가 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9년 7월부터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반도체용 화학소재의 국산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고 어느 시점부터 일본산을 100% 대체할 수 있는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100% 대체가 불가능에 가깝고 또 100% 대체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100% 대체를 강조했던 것 자체에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반도체는 산업이 고도화되고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없어서는 아니 될 필수적인 존재로 부상하고 있으며, 메모리나 시스템을 불문하고 국산화를 확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공급부족 사태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코 자동차에 그치지 않고 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는 것에서 나아가 반도체용 화학소재 개발을 강화할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