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고전하고 있다는 뉴스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구닥다리로 치부되고 있다. 석유화학 고전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을 혁신하거나, 사업구조를 재편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통폐합을 전제하기는 하나 오직 정부에 특혜를 요구하는 메아리만 울리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할 필요는 있으나 먼저 개별기업 차원에서 경영을 쇄신한 후 정부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 순서이나 전혀 그러하지 않고 있다.
석유화학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울릴 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운데 특혜를 요구하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동의도 얻기 어렵다. 국회에 가서 떠든다고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면, 일본 화학기업들은 석유화학 사업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메이저를 중심으로 개별기업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규모가 큰 스팀 크래커는 단지 중심으로 통폐합하고 범용 사업은 매각하거나 철수하며 자동차‧전자‧반도체‧배터리에 투입되는 화학소재나 헬스케어 사업은 고부가가치화‧차별화를 강화함으로써 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 화학기업들은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소재, HBM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소재와 후공정 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배터리 소재는 중국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함에 따라 차세대 전고체전지, 황화물전지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 화학기업들이 세계적인 불황 국면에서도 적자를 탈피하고 흑자로 돌아섰으며, 2025년에는 흑자가 커질 것을 자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도 석유화학이 주력이나 오래전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이 없는 사업은 매각하거나 철수함으로써 적자 리스크를 줄였으며 수요가 있고 성장성이 양호한 동남아‧인디아 진출을 서두르고 있고, 정밀화학을 중심으로 특수화 노력을 강화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이 매출액을 중시해 규모화에 치중한 반면, 일본은 매출보다는 수익성을 우선한다는 차이가 있다. 일본이 개발했거나 개발하고 있는 특수 화학소재는 시장성이 그리 크지는 않으나 경쟁기업이 없어 높은 수익성을 올리고 있다. 중국이 범용에 이어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나 기술개발을 통해 차별화를 강화해 대응하고 있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화학소재의 고부가가치화‧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20-30년 전부터 있었으나 아직도 범용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경영전략에 문제가 있고 단기적 영업실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문제이지만 연구개발 능력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개발 능력은 화학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전체적인 문제로, 앞으로 산업 발전과 성장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 확실하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호황에 젖어 연구개발에 소홀했을 뿐만 아니라 20-3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도 갖추지 못한 것이 화근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개발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체 연구개발 구조를 혁신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과의 협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되나 어차피 겪어야 할 문제이다.
국내 화학기업들은 국가와 정부에 손을 벌리기 전에 스스로 생존하려는 노력을 우선해야 하고, 연구개발 기능을 혁신해 50년,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화학저널 2025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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