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법(CHIPS Act) 폐지를 예고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반도체법을 투자 유치에 적극 활용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 전면 폐지 또는 최소한 거액의 보조금과 세금 지원을 철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을 중심으로 미국 사업을 계획하던 관련기업들이 전략을 재검토하는 등 미국 반도체 시장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조기 대선을 치르는 가운데 정책이 표류하면서 반도체 육성 대책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시장 나홀로 성장
미국 반도체 시장은 양호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 12월 반도체 매출이 200억달러(약 27조1800억원)로 전년동월대비 3.2% 증가해 155억3000만달러(약 21조1000억원)로 3.8% 감소한 중국을 따돌리고 1위를 유지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이 132억6000만달러(약 18조200억원), 유럽이 41억6000만달러(약 5조6500억원)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미국은 유일한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미국은 전략적인 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의 성과로 2024년 여름 장기간 지역별 매출 1위를 유지하던 중국을 넘어 1위로 올라섰으며 중국과의 격차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반도체 공급망 형성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반도체 생산을 아시아에 의존하면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공급 부족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측면에서도 직접 반도체를 생산할 메리트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도 불리며 스마트폰, 자동차, 데이터센터 등 민간수요와 IT 인프라에 필수적이다. 아울러 경제발전과 안전보장에 있어 국가전략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법 지원 아래 2032년 생산능력 200% 확대
미국은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2022년 반도체법을 제정했다.
인건비와 건설비가 높은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은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으나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에 따른 거액의 보조금과 투지세액 공제를 통해 세계 반도체 관련기업으로부터 다수의 반도체 투자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미국은 반도체법이 제정된 2022년부터 2032년까지 반도체 생산능력이 200%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을 능가하는 성장률이 기대되는 국가는 없으며 글로벌 반도체 생산능력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0%에서 14%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반도체법이 없으면 점유율이 8%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로직 반도체 생산 점유율 역시 0%에서 28%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법은 약 50개의 투자계획을 지원할 예정이다. 인텔(Intel)을 비롯해 마이크론(Micron),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애널로그디바이시스(Analog Devices), 글로벌파운드리(GloblaFoundires) 등 미국기업이 대부분이다.
미국기업들이 주로 첨단·레거시 전공정에 투자하는 가운데 울프스피드(Wolfspeed)는 SiC(탄화규소) 파워반도체 장비 생산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후공정 투자는 전공정보다 적은 편으로 인텔, 앰코(Amkor) 등이 첨단 패키징에 투자한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는 인테그리스(Entergris), 코닝(Corning), 헴록(HemlocK Semiconductor) 등이 있다.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이 일본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텍사스에 고순도 화학제품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2025년 1월 반도체법 보조금을 신청했다.
트럼프 대통령, 반도체법 폐지 검토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 보조금을 긴급하게 확정했다.
2024년 12월 양해각서(MOU) 체결단계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보조금을 확정했으며 2025년 1월에도 헴록, HP, 코닝 등의 보조금을 확정하는 등 정권 이양을 의식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반도체법 보조금을 발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정책을 통한 미국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으며 반도체법의 전제조건 재검토 및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이 없어지면 반도체 관련기업들은 전략을 다시 짜야 하며 50개 이상의 투자계획 가운데 아직 약 40%는 MOU 단계에 머물러 있다.
북미사업을 확대함에 있어 최대 관건은 관세정책이며, 반도체 관련기업들은 원료 조달망을 포함 관세를 언제, 어떻게, 어디에 부과할지 주목하고 있다.
원료 조달망에도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에서 현지조달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으나 코스트 상승이 우려되며, 일부에서는 정책적인 불확실성을 고려해 방향성이 명확해질 때까지 수요기업과의 샘플 테스트를 중단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리조나, 첨단 반도체 핵심지역으로 부상
애리조나가 미국 첨단 반도체 생산의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웨이저자 TSMC 회장은 2025년 3월3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애리조나 1000억달러(약 144조8800억원)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TSMC는 2024년 말부터 No.1 공장에서 4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고 2028년 2-3나노 No.2 공장을, 2030년 전까지 2나노 이하 최첨단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No.3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애리조나의 주도인 피닉스(Phoenix) 남동쪽에 위치한 챈들러(Chandler)에서 인텔이 2번째 공장을 건설하는 등 애리조나는 안정적인 기후와 우수한 인재 공급능력에서 첨단 반도체 투자의 최적지로 평가된다.
애리조나는 비가 적게 와 허리케인·홍수 등 자연재해 리스크가 작으면서 맑은 날이 많아 태양광발전을 이용하기 용이한 편이며, U.S. News & World Report가 발표하는 대학 순위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부문 10년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애리조나주립대학(ASU)은 반도체 인재 풀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ASU는 반도체법의 지원을 받아 팬 아웃 웨이퍼 레벨 패키징(FO-WLP)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 미국 상무부는 2025년 3번째 국립 반도체 기술센터(NSTC) 플래그십 연구개발거점(PPF)을 ASU에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뉴욕 EUV(극자외선) PPF, 캘리포니아 반도체 설계 PPF에 이어 애리조나에서도 산·관·학 연계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소재 생산기업들 역시 애리조나 주위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스퍼터링 타겟을 공급하는 일본 JX금속(JX Nippon Mining & Metals)은 2024년 피닉스 교외 메사(Mesa)에 공장을 건설했으며, MGC(Mitsubishi Gas Chemical)는 애리조나 공장의 고순도 과산화수소·암모니아수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스미토모상사(Sumitomo)는 2022년 피닉스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사업 확대에 맞추어 확장을 검토하고 있고, CMP(화학적 기계연마) 슬러리 글로벌 1위인 후지필름(Fujifilm)도 애리조나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애리조나 동쪽에 위치한 텍사스에 테일러(Taylor)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다만, 테일러 공장은 건설이 지연돼 2026-2027년 가동할 예정이다.
TSMC, 삼성전자 등이 미국에서 공장을 가동함으로써 아시아로 집중되던 첨단 반도체 생산지형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윤우성 선임기자: yys@chemlocus.com)
표, 그래프: <미국의 반도체 관련 투자 프로젝트, 반도체법 주요 투자 프로젝트 지도>
<화학저널 2025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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