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산업이 불황의 질곡으로 빠져들고 있다.
석유화학은 BTX가 그런대로 선전하고 있으나 올레핀 계열은 회생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으며 BTX도 유도제품으로 넘어가면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수요산업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어 플래스틱이나 정밀화학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비슷한 형국이어서 타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하면서 글로벌 경제 전체가 침체되고 있고, 한국 화학산업의 성장을 떠받쳐주던 중국마저 성장성이 크게 둔화됨으로써 공급과잉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특히,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코스트까지 가파르게 상승해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중국 경제 침체로 수요가 줄어들면서 배럴당 90달러가 무너지는가 싶더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세가 강화되고 추위가 빨리 다가오면서 100달러를 향해 줄달음하고 추위가 본격화되면 120-130달러를 넘나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OPEC+가 하루 200만배럴 감산을 결정한 것이 결정적이다.
국내에서 스팀 크래커를 가동하고 있는 석유화학기업들은 2022년 상반기에 매출은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급감 또는 격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반동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역대급 호황을 구가했으나 2022년 들어 국제유가 폭등을 타고 번진 인플레이션의 강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 화학기업들은 경기침체의 영향이 불가피한 가운데서도 영업이익 감소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PVC 현물가격 폭등으로 영업이익이 폭증한 신에츠케미칼이나 도소가 고전하고 있는 것 외에는 경기침체의 영향이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에츠케미칼조차도 PVC의 불황이 엄습했으나 반도체용 실리콘웨이퍼 공급 부족이 장기화하면서 선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석유화학을 베이스로 정밀화학, 배터리 소재, 생명과학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LG화학은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화학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고부가가치 차별화 기술 보유 여부가 판가름하고 있다. 반도체·전자, 배터리, 통신, 자동차 관련 소재는 일반 범용 소재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불황 국면에서도 수익성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범용 비중을 줄이고 차별화를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막대한 연구개발비용을 투입하고서도 고부가 화학소재를 개발·생산하지 못하고 있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미래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근시안적 자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기존 사업의 연결선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안이함도 문제이다. 획기적이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바일, 태블릿, 카메라, 웨어러블, 자동차 시스템, 광범위한 센서 등을 활용한 인터페이스 모델을 구축하고 빅데이터를 넘어 AI 활용에 투자해야 하나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데이터를 분석·액세스할 수 없고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형 암호화 알고리즘 활성화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일본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이버 보안을 강화하고 화학공장 가동도 원격 조정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인데…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Bain)은 폐쇄적이고 중앙집중화된 플랫폼에서 벗어나 개방적, 연합적, 스트리밍적 에코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 화학기업들은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