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칼럼]
“석유화학 불황의 골 깊다”

 석유화학 가격이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고 있어 관련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LLDPE를 비롯해 PVC 가격이 이미 톤당 400달러에 근접해 있고 HDPE, LDPE, PP 가격도 끝없는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이 1-2달 길어지면 합성수지 가격이 톤당 300달러대로 폭락했던 1990년대 초의 상황이 반복될 것이 분명해 보이고 있다. 합성수지 가격이 톤당 300달러대로 폭락하게 되면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과연 어떠할까? 1-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상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고, 최근 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현대석유화학이나 고합, 삼성종합화학 등은 치명타를 받게 될 것이 명확하다. 물론 3사를 제외한 다른 석유화학기업들도 대부분 적자가 확대되거나 적자로 돌아서는 아픔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에틸렌 및 프로필렌 가격이 톤당 300달러대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PE나 PP, PVC 가격이 300달러대라는 것은 석유화학기업들에게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최악의 상태이다. 그나마 나프타 가격이 톤당 200달러 아래로 떨어져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가격과 합성수지 가격 차이가 최소한 톤당 250-300달러가 되어야 적자를 면하거나 약간의 흑자를 볼 수 있는 상태에서 기초유분 가격과 합성수지 가격이 비슷한 상황에 이르게 됐으니 공장을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형국이다. 한국이나 동아시아에 국한된 상황은 아니지만 미국경기의 불황을 시발로 시작된 경제침체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소비마저 극도로 위축돼 활로가 막막한 상태이니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언제쯤 되살아날지 감을 잡기도 힘든 국면이다. 현재의 상태대로 석유화학 시장이 움직인다면 2001년 흑자를 기록할 석유화학기업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 분명하고, 2002년에도 암흑의 터널이 지속될 것은 명약관하이다. 미국-아프간 전쟁이 쉽사리 끝날 것으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미국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계 소비의 25-30%를 점유하고 있는 미국경제는 IT 거품이 빠지면서 질곡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다분하고, 미국수출에 의존해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이나 아시아 경제가 미국경제의 부활 없이 독자적으로 회생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상태이니 무엇인가 돌파구를 미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해결책은 없는 상태이니 갑갑하다는 것이다.
 중국경제에는 아직까지 먹구름이 끼지 않고 있어 다행이고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국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나, 중국도 전체적인 경제환경은 양호하나 플래스틱 가공부문은 역시 미국수출 의존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합성수지 수입을 줄일 수밖에 없고 곧바로 석유화학기업들에게 직격타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중동이나 동남아가 합성수지나 합섬원료 수출대열에 끼여들지 않아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수출가격을 끌어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나 현재는 중동의 수출공세가 만만치 않고 동남아까지 합류해 가격인상이 쉽지는 않은 상태이다.
 중국 또한 예전과 달리 가격이 오르면 구매를 자제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구매를 연기하는 고단수를 사용하고 있어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가동률을 조정하면서 가격인상을 꾀하는 것도 더 이상 먹혀들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중동 및 동남아의 수출전선 합류 외에도 중국이 자체 생산능력을 대폭 확장함으로써 자급률을 높이고 있는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고 보여지고 있다.
 중국이 수요저조 국면에서는 자급률이 급격히 상승해 수입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상태이니 한국의 가동률 조정이 먹혀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고, 한국이 아니더라도 동남아와 중동, 그리고 공급과잉으로 돌아선 미국 및 유럽까지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히 위험한 상황은 미국의 공급과잉 물량이 본격적으로 아시아에 유입되는 것이다. 헌데 최근의 미국경제 상황을 보았을 때 2002년 초부터는 미국 및 유럽의 공급과잉 물량이 아시아에 저가공세를 펼 것이 확실해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특단의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상황이다.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이 골 깊은 불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나아가서는 지금도 그러다가 좋아지겠지 하는 만용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화학저널 20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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