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골판지 원지 생산기업 12곳에 대해 2007-2012년 공급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118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세아제지, 신대양제지, 동일제지, 고려제지를 중심으로 과징금 1184억원 부과로도 모자라 12사 모두를 검찰에 고발한다고 한다. 골판지 원지 가격담합이 2000년, 2004년에 이어 3번째 적발됐다고 하니 당연할 것이다.
골판지 원지 생산기업 12사는 담합을 통해 2007년부터 5년간 총 9차례에 걸쳐 원지 가격을 톤당 2만-9만5000원씩 올렸다고 한다. 특히, 상위 4사의 영업임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가격인상 필요성, 인상시기 등을 논의했고, 대표들은 서울 강남의 고급식당에서 가격인상 폭과 시기를 논의하고 결정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더군다나 한국전력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면서 전력 사용량을 확인하는 등 실행 여부를 서로 감시함으로써 골판지 원지 가격을 2007년 1월 톤당 26만-27만원에서 2012년 12월 50만원으로 무려 65% 정도를 급등토록 유도했다. 골판지 원지 가격이 하락추세를 나타냈던 2009년 상반기에는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사전 조율에 따라 매달 3-5차례 조업을 단축하기도 했다고 하니 상당히 악질적인 면이 없지 않다.
시장규모 2조원에 과징금을 받은 12사의 점유율이 80% 수준이라고 하니 심각한 경쟁제한을 불러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곳은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고 공급가격을 65% 정도 인상해 폭리를 취한 것이 모두 담합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지 않은 상태에서 과징금 1184억원은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다. 가격담합 적발이 3번째라고 하니 검찰고발을 당연하다 할지라도…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1992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회합을 갖고 1994년 3월부터 가격담합에 그치지 않고 수급까지 담합한 카르텔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 공정위가 중소기업에 대해 어마어마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까지 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화학저널이 여러 차례에 걸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자 1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어찌할 수 없이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주모자를 제외한 조사 방해자 위주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오욕의 역사에 큰 방점을 찍지는 않았다.
하지만, 봄철이면 연례적으로 벌어지는 석유화학 국제카르텔에 대해서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다.
매년 열리는 아시아 석유화학 회의를 통해 국내 석유화학기업을 비롯한 석유화학 메이저, 무역상, 유통상들이 수급을 논의하고 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가를 암암리에 소통한 뒤 정기보수라는 미명 아래 가동률을 조정해 공급을 줄이고 심지어는 가격을 폭등시키기 위해 정기보수룰 집중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골판지 원지는 조업을 조정해 가격을 인상하면 안 되고 석유화학은 정기보수나 가동률 조정을 통해 가격을 폭등시켜도 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공정위 논리는 중소기업은 불가하고, 재벌기업은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고위관료들이 퇴직한 뒤 갈 곳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재벌기업이니 어찌할 수는 없다면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