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에 걸쳐 있어 국력이 약하면 약소국으로서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한때 힘을 얻었고 이른바 식민사관이라고 비판받은 기억이 있다. 물론 국력이 강하면 대륙과 해양을 호령하면서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할 수 있다.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 지리적인 유불리는 어느 나라나 존재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미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중국에 대해 경제적 선전포고를 단행하면서 다시 반도국으로서의 위치가 재부각되고 있다. 안보동맹국인 미국의 편에 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제적 의존도가 커진 중국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는 딱한 처지가 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일본까지 위협하고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20년 만에 조선 말기의 위기를 다시 느껴야 하는 비참함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김현석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가 용역을 수행한 일본의 관세율 변화에 따른 일본 수출 변화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본이 한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30% 올리면 일본 수출량이 최대 7.9%, 수출액은 24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한국산에 대한 관세율을 10% 인상하면 수출량이 2.2%, 20% 인상하면 4.8%, 25% 인상하면 6.3%, 30% 인상하면 7.9%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관세율을 인상하면 의료기기·정밀기기·광섬유 등 광학기기, 주방용품을 비롯한 알루미늄제품, 참치·굴 등 수산물, 메탄올 유도제품을 중심으로 한 유기화학제품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행하게도 일본과 수출입 관계가 강한 화학제품이 포함돼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한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국 주재 일본대사의 소환, 한국산에 대한 수입관세 인상, 일본에 있는 국내기업의 자산압류 등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격화에 따라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의 관계까지 악화되면 국내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으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관계개선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물론,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엄청난 판국에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하고 한국도 상응하는 보복에 나서면 일본이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과연 일본의 손실이 더 클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산을 덜 수입하고 한국이 일본산을 더 수입한다는 것은 한국의 일본산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고, 내용 면에서도 일본의 한국산 수입 필요성보다는 한국의 일본산 수입 필요성이 더 크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은 범용제품 위주로 수출해 대체가 쉬운 반면, 일본은 고부가가치 차별제품 또는 대체가 불가능한 사례가 많다.
화학제품도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수출은 대부분 범용이고 수출단가로 승부하는 반면 일본산 수입제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특수제품이 대부분이다. 배터리, 반도체, 전자제품용 화학소재가 대표적이다.
만약,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중국이 한국산 수입을 제한하면 범용제품 수출이 타격을 받고 일본과도 틀어지면 일본산 특수 중간소재 수입이 차단돼 국내 경제가 마비상태에 빠질 수 있다.
미국-중국-일본 사이에서 불행한 일을 당하기 전에 만반의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