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이 3월부터 정기보수를 본격화하나 주52시간 근무제에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본격 시행됨으로써 적극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정기보수는 1-3년에 1회 실시함으로써 정규직 외에 하청기업 인력이 다수 소요됨으로써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렵고 외부인력을 대량 투입함으로써 안전사고가 빈발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도 2020년에 이어 2021년까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서 정기보수 시즌을 맞이하고 있으며, 지역감염 확산으로 일부 지방에 비상사태를 선언해 일정 변경 및 감염 방지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정유‧석유화학 플랜트가 노후화되고 정기보수 인력 노령화가 공통적으로 나타나 일정 차질 및 보수 효율화 저해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차질 불가피”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은 2020년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됨으로써 보수인력을 확대해야 함은 물론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기보수는 2-3년 주기로 실시해 숙련인력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숙련인력 제한으로 추가 채용이 불가피해 미숙련 근로자의 실수에 따른 치명적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은 플랜트 정기보수에 주80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점에서 주52시간제를 도입하더라도 탄력근무제를 현행 2주에서 6개월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치산업은 4조3교대, 주당 42시간 근무가 정착돼 있어 주52시간 근무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기보수는 경력이 많은 엔지니어를 장기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탄력근무제 운영기간 연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은 정기보수 기간에 탄력근로를 현행 2주에서 3-6개월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기보수 과정이나 공정상 문제가 발생하면 비상 가동중지가 불가피하고 이후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예외조항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특정 플랜트의 정기보수가 끝나면 다른 플랜트로 이동하는 특성상 주52시간제로 보수기간이 늘어나면 제때 이동할 수 없어 안전점검을 늦추고 공장을 가동하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0년 하반기에도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이 정기보수를 실시했고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금호석유화학 등도 2021년 정기보수를 예정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사고 “비상”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등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해당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더 큰 위협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산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적용유예 대상을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국회가 50인 미만으로 한정해 2021년 1월8일 의결했고 적용유예 기간도 공포 후 4년에서 3년으로 축소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유예 없이 공포 1년 후 즉각 적용하고 50인 미만 사업장도 공포 3년 후 적용하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유예기간 동안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도급은 처벌받을 수 있다.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자가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직업상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 플랜트는 일상적으로 중대재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정기보수 기간에는 외부인력 투입이 많아 각종 안전사고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만약, 2020년 3월4일 발생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의 스팀 크래커 폭발사고와 같은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간부는 물론 경영자까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으나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고, 비전문가가 판단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 코로나19로 기간 단축에 인원 축소
일본은 2020년 코로나19 영향으로 정기보수 차질이 상당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석유화학 컴플렉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영향을 받은 곳은 이바라키현(Ibaraki)의 가시마(Kashima) 컴플렉스로, 이바라키현의 오오이가와 지사가 4월13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출자제를 요청했고 가시마 컴플렉스 입주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변경 및 철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가시마 동부 컴플렉스는 당초 4월20일-7월26일 97일에 걸쳐 대규모 정기보수를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이바라키현과 카미스시(Kamisu)의 요청에 따라 정기보수 시작 시점을 변경하고 기간 단축을 결정했고 최종적으로 5월12일-7월31일 80일 일정으로 진행했다.
정기보수에 참여하는 인원도 처음에는 32만6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22만6000명으로 줄였고 가장 많이 투입될 때 기준 하루 인원도 9500명에서 5600명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컴플렉스 입주기업으로 구성된 가시마 동부 컴플렉스 정기보수 대책본부에 따르면, 5월 초부터 정기보수가 실제로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상세한 일정을 확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졌다.
입주기업마다 공사 수를 줄이거나 2021년으로 미루는 등 입장이 상이했고 보수규모를 줄이는 곳도 있었기 때문에 2020년 5월11일까지도 정확한 스케줄을 공표하지 못했다.
입주기업들은 정기보수 기간 중 작업자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시키는 대책을 약속했고,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100건이 넘었으나 2-3일에 1건 정도로 크게 줄어드는 등 지역사회 반발도 잠잠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정기보수 단축으로 본래 진행할 계획이었던 공사를 2021년으로 미룬 곳이 있어 현장에서는 앞으로 어떠한 형식으로든 영향이 가시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작업자 건강상태에 동선 파악도 중요
야마구치현(Yamaguchi) 슈난시(Shunan)에 소재한 슈난 컴플렉스도 정기보수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했던 2020년 4월15일 야마구치현 무라오카 지사가 대규모 정기보수를 앞둔 석유화학기업들을 대상으로 공문을 보내 다른 지역에서 작업자가 올 때 감염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슈난시 역시 17개 석유화학기업으로 구성된 슈난지구 컴플렉스 보안방재협의회에 시장 명의로 요청문을 보내 정부가 지정한 특정경계지역의 작업자는 오지 않도록 할 것과 부득이하게 다른 지역에서 방문할 때는 2주 동안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동선을 기록할 것을 요청했다.
전체 작업자를 대상으로도 정기보수 기간 중 건강상태 파악 및 외출자제를 철저히 시행해줄 것도 요구했다.
도소(Tosoh)는 사전에 코로나19 관련대책을 마련한 후 5월 초 연휴가 끝나자마자 가성소다(Caustic Soda)와 VCM(Vinyl Chloride Monomer)을 생산하는 난요(Nanyo) 공장의 정기보수를 시작했고 예정대로 6월 중순 완료했다.
도소는 난요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업장을 출입하는 모든 작업자를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체온을 측정하도록 했고 기준을 더욱 강화해 37도만 넘어도 출입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2주 동안 해외에 다녀왔거나 열이 났던 사람들도 작업에서 제외했으며 작업에 투입된 사람들 역시 불필요한 회의 및 회식이나 대면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기본적인 손 씻기, 소독, 환기, 거리 유지 등도 철저히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현장 철저 관리에도 주민민원 충돌
야마구치현 우베시(Ube)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우베코산(Ube Kosan)은 5월6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정기보수를 진행했다.
우베코산은 우베에서 식품포장 필름으로 사용하는 나일론(Nylon) 등 생활필수품과 의약품 등을 생산하고 있고 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아비간 중간체 역시 생산을 재개했다.
정기보수는 감염방지 대책을 철저히 세워 진행했고 직원들과 공사 관계자들이 출입할 때마다 체온을 측정하고 매일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3밀(밀폐·밀접·밀집)을 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조성했다.
불필요한 외출과 시내 음식점 식사 자제도 요청했다.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는 건강관리책임자와 위생관리자가 건강관리기록표를 매일 확인하고 코로나19 증상이 의심되는 작업자는 출입을 막았으며 3밀 방지를 위한 감시체제도 시행했다.
홋카이도(Hokkaido)의 토마코마이시(Tomakomai)는 4월30일 이데미츠코산(Idemitsu Kosan)의 홋카이도 정유공장에 정기보수 공사 축소를 요청했다.
공문에서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석유제품을 계속 안전‧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점검 및 공사만 시행할 것 △공사할 때 작업현장 뿐만 아니라 숙박시설에 대해서도 감염방지 대책을 세우고 주민들에게도 고지할 것 △작업자와 공사 관계자들의 감염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철저히 세울 것 등을 요구했다.
이데미츠코산 홋카이도 정유공장은 6월부터 2개월에 걸쳐 4년마다 1번씩 실시하는 대규모 정기보수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토마코마이시의 요청에 따라 5월22일 정기보수 일정을 2주 미루고 공사 축소를 결정했다.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작업자 수도 9000명에서 4700명으로 축소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정기보수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 대규모 인파가 들어오면 감염 리스크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민원이 않았다.
하지만, 사회기반을 지탱하는 석유 및 화학 공장을 안전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계속 가동하기 위해서는 정기보수가 반드시 필요해 민원을 접수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입주기업 모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유지보수 분야도 코로나19 대책 시행
유지보수 분야도 코로나19 대책 마련을 서두렀다.
유지보수 작업자들은 계속 한 작업장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에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건강을 관리해줄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과제로, 일본 유지보수공업협회가 작업자의 건강 관리와 동선 확인이 가능하도록 통일된 포맷을 작성한 후 회원기업들에게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화학 플랜트의 유지 및 검사와 정기적 점검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고압가스보안법을 관장하는 경제산업성도 검사 및 점검 일정을 최대한 4개월 연장하는 것을 허용하는 특례조치를 마련했다.
공사를 축소하는 곳이 대부분이나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사람들의 밀집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정기보수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례조치는 4월10일부터 9월30일까지 정기보수를 진행하는 사업자 대상으로 시행했다.
특례조치 기한을 늘리거나 아니면 10월 이후 정기보수를 진행하는 사업자를 위한 또다른 특례조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일부 사업장들이 정기보수 일정을 연장해도 작업자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토로함에 따라 10월 이후 정기보수를 진행하는 곳을 대상으로 한 조치는 인원을 확보하기 전단계에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윤화 선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