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는 2022년 말까지 배럴당 100달러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금지를 추진하면서 최대 일일 300만배럴 수준의 공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반발로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증산 효과가 크지 않고, 이란산 원유 공급 재개가 늦어지고 있으며, 미국의 셰일오일(Shale Oil) 공급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공급부족 요인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 여름철은 휘발유(Gasoline) 성수기이기 때문에 원유 수급이 더욱 타이트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유기업들은 국제유가 폭등으로 정제마진이 개선돼 영업이익 잔치를 벌이고 있는 반면, 석유화학기업들은 국제유가가 초강세를 장기화하면서 초반에는 수익성이 크게 좋아졌으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구조적 공급부족에 코로나19로 수요 파괴 “요동”
국제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브렌트유(Brent)는 2022년 2월 한때 배럴당 139달러를 넘어서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WTI(서부텍사스산 원유)는 130달러까지 급등해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형성했다.
국제유가는 2000년 이후 2가지 요인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공급부족 요인이 작용해 강세를 계속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2020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면에서의 수요 파괴에 따른 공급 부진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조적 측면에서는 서방의 석유기업들이 셰일 가격 붕괴 영향을 받아 석유 탐사 및 생산에서 장기간 자본수익률 저하를 겪었고,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활용하라는 세계적인 ESG 트렌드에 따라 석유·가스에 대한 투자 중단 및 제한 조치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도 석유 시장의 판도를 재편하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관리형 협력 구조가 존재했고 2020년에는 다시 경쟁체제가 조성돼 OPEC+가 대량생산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셰일과의 경쟁에서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거래가격을 배럴당 40-50달러로 끌어내렸으나 코로나19 때문에 판이 완전히 역전됐고 수요 파괴의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글로벌 LNG(액화천연가스) 시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는 비교적 사정이 괜찮았으나 러시아의 도발로 역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에너지 관점에서 서유럽은 러시아와 깊이 연관돼 있지만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다른 지역의 공급이나 다른 에너지로 대체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공급부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 전력 가격 또한 연쇄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고, 연쇄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북미로 확대되고 있다.
석유 시장은 공급이 조금만 감소해도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고 서방세계가 러시아산 원유 공급을 동결한데 이어 천연가스까지 차단함으로써 러시아가 가격을 낮추어도 구매자가 없는 지경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세계 경제에 제2의 공급 충격을 안길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아시아는 에너지원이 다변화돼 있어 공급 측면의 타격이 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단기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고, 에너지 가격 급등 후 경기 침체가 도래하면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고 가격이 폭락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러시아 제재로 원유 공급 일일 300만배럴 감소
국제유가는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초강세를 거듭하고 있다.
WTI 선물가격은 2월24일부터 급등해 3월 초 130.50달러로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90달러대로 하락했으나 3월 말 다시 120달러 초반을 회복하고 4월 말까지도 100달러 초반부터 110달러 사이에서 등락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 7개 은행을 스위프트(SWIFT)에서 제외했으며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은행의 신용장 발행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구매를 차단하고 있다.
경제제재 외에도 러시아산 원유 구매 자체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어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이 급감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산 원유 공급 감소를 보충해줄 움직임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는 OPEC+의 일원으로 증산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OPEC+가 2021년 8월부터 이어온 일일 40만배럴 증산 정책에서 감산 폭을 추가로 줄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은 핵 합의 문제가 해결되면 공급량을 일일 120만-130만배럴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나 핵 합의 협상에 러시아가 관여돼 있어 진전이 없고 핵 합의가 타결돼도 합의 내용 확인 및 생산설비 재가동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은 사상 최대인 1억8000만배럴의 전략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고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비축유 방출을 지원하고 있으나 양적 임팩트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OPEC이 증산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란산 원유 공급 재개까지 최소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 공급 감소를 대체할 요소가 없어 글로벌 원유 수급은 장기간 타이트 상태를 나타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당분간 100달러 아래로 폭락할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셰일오일 생산 확대를 기대하고 있으나… 
국제유가는 2020년 상반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급락했으나 백신 개발과 경제활동 재개에 힘입어 2020년 하반기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2021년 말부터 급등세로 돌변해 브렌트유와 WTI는 2021년 12월 이후 2달반 만에 모두 30% 넘게 폭등해 90달러대에 진입했다. 브렌트유와 WTI가 90달러를 넘은 것은 2014년 10월 이후 7년4개월 만이다.
국제유가는 2008년 130달러대가 역대 최고치이다.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달러화 약세, 중동정세 불안, 중국·인디아의 고속 성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폭등했고, 한동안 주춤했으나 신흥국 수요 증가와 산유국의 증산 경계 영향으로 다시 급등해 2011-2014년 100-120달러대 흐름을 이어갔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원유 수요는 2019년 일일 9970만배럴에서 2020년 9100만배럴로 9% 가량 감소했으나 2021년 6% 증가했고 2022년
에도 3% 늘어나 9940만배럴에 달함으로써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겨울철 이상 한파까지 몰아치며 난방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원유 시장의 구조적 변화, 강대국 사이의 패권 다툼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 때문으로, 석유기업들은 팬데믹 이전부터 친환경 기세에 눌려 원유 채굴과 관련된 자산을 매각하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투자액이 2018년 22억8000만달러에서 2020년 37억1000만달러로 63% 확대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6-2020년에는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자산 매각건수가 매입건수를 2배가량 웃돌았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확대, 예멘 반군의 UAE 석유시설 공격 등 지정학적 위기가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UAE는 각각 세계 2위, 5위의 원유 수출국이다.
특히, 러시아는 경제·안보 영역에서 압력을 가하는 서방세계에 맞서 원유를 무기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에 가까워진 가운데 미국 셰일오일 생산기업들이 앞다투어 생산을 늘리면 국제유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미국 유전 서비스 베이커휴즈(Baker Hughes)에 따르면, 2022년 2월7-13일 미국에서 가동하고 있는 석유 시추장비는 516기로 2018년 2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으나 러시아산 공급 차질을 메꿀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정유‧석유화학, 고유가 장기화하면 타격 불가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국내 정유·화학기업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초고유가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미국, 유럽 등 서방이 반도체를 비롯한 하이테크제품의 러시아 수출제한 조치에 이어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까지 수입을 차단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 차질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제재하면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과 동맹이 입을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러시아산 원유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다시 규제에 나섰고, 유럽도 에너지난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취했으나 수입 차단에 나섬으로써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장기화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유기업들은 저유가일 때 구매한 비축분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 평가이익이 커져 2022년 1분기 영업이익이 급증했으나 국제유가 강세가 장기화되면 석유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석유화학기업들도 초반에는 국제유가 강세로 나프타(Naphtha) 가격이 상승하면서 에틸렌(Ethylene)을 중심으로 한 올레핀, 아로마틱(Aromatics) 국제가격이 급‧폭등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으나 국제유가 초강세가 장기화되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돼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나프타 수입비중이 약 20%이고, 수입량 중 약 23%는 러시아산으로 파악되고 있다. 만약,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제한되면 나프타 구매가 몰리면서 나프타가 급‧폭등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 확대를 고려하면서 중동·남미 등으로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비중이 13% 내외로 최대 수입국 중 하나였으나 2018년 미국 정부가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면서 수입이 금지됐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17년 당시 이란산 원유 도입비중은 SK이노베이션 16%, 현대오일뱅크 13%, 한화토탈 59%, 현대케미칼 77% 등이다.
석유화학, 나프타 폭등에 수요 감소로 “고전”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고유가가 장기화하면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나프타는 국제유가 폭등으로 7년 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원료 코스트 부담이 커졌으나, 수요가 줄어들면서 원가 상승분을 100% 반영하지 못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프타 현물가격은 2022년 1분기에 톤당 878달러 수준으로 2014년 3분기 916달러 이후 최고치를 형성했다.
나프타는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4월 100달러대까지 폭락한 후 석유제품 수요 회복을 타고 완만하게 상승했고 국제유가 폭등으로 2021년 말에는 700달러를 돌파했으며 2022년 3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유가 폭등과 러시아산 나프타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서 1000달러를 돌파해 약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최근 석유화학제품 수출은 감소하고 있다.
석유화학제품 현물가격이 폭등하면서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고,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이 2022년 초부터 상하이(Shanghai)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에 봉쇄령을 내리면서 수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공급 감소에 물류난이 겹침으로써 석유화학제품 거래량이 줄고 가격도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케미칼은 2022년 1분기 영업이익이 826억원으로 2021년 1분기 7037억원의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은 올레핀 사업이 적자로 전환됐고 HDPE(High-Density Polyethylene), PP(Polypropylene), MEG(Monoethylene Glycol)는 원료코스트와의 스프레드가 각각 39%, 36%, 40% 하락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LG화학도 1분기 영업이익이 1조243억원으로 2021년 1분기 1조4000억원에 비해 27.3% 감소했다.
석유화학기업들은 나프타 급등을 고려해 임시로 0%의 할당관세를 적용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당관세는 일정기간 일정물량의 수입에 대해 관세율을 일시적으로 낮추거나 높이는 제도이다. (박한솔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