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경제는 최근 경기 회복세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인력 부족, 물류난 등 사업 운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배터리, 반도체 등 해외로 이전했던 제조업 생산설비가 복귀하고 세계 최대 헬스케어 시장을 보유하고 있어 비즈니스 전략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정권은 전기자동차(EV) 시장 확대를 선도하고 있으며 경제적 안전보장 관점에서 반도체, 배터리의 국산화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으로 도시 주변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주택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미국 시장이 거대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사업 입지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국내 화학기업들은 배터리‧자동차 진출을 타고 소재 생산기업들이 일부 투자에 나설 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심화로 금융완화 정책 종료…
미국은 코로나19 백신 보급, 대규모 양적 완화 투자를 통해 경제를 회복했으나 최근 다시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물류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미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해외기업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산 WTI(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가격은 최근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2014년 7월 이후 약 7년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에 진출한 화학기업들은 휘발유를 비롯한 범용제품 인플레이션에 따른 압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경제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5.7%로 37년만에 가장 높았고, 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개인소비 기여도가 5.3%포인트에 달해 화학제품 수요를 뒷받침함으로써 화학기업 영업실적이 회복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적완화 종료, 계속되는 물류난에 우크라이나 정세 등이 겹쳐 수익 확대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응해 2년 가까이 정책금리를 0-0.25% 수준으로 낮게 억제했으나 최근 경기 활성화 정책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융완화가 동시에 종료됨에 따라 경제 회복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 정권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재정 긴축으로 선회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1월 말 미국의 GDP 성장률을 4.0%로 1.2%포인트 하향 수정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 폭등, 주가 하락의 영향으로 정책 전환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류난 심화에 인력 부족도 고전 요인
물류난 장기화도 경기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출발해 북미에 도착하는 컨테이너 요금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대폭 상승했으며 해상운송에 그치지 않고 육상운송도 정체되고 있다.
만료기한이 다가오고 있는 캘리포니아 항만의 노사 협약도 물류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에서 북미로 보내지는 해상운송의 현관인 서안에서 항만 운영단체인 미국 태평양해사협회(PMA)와 약 1만5000명의 노동자가 가입하고 있는 국제항만창고노동자조합(ILWU)의 근로계약이 2022년 7월 만료되기 때문이다.
PMA가 이전에 비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협상 난항으로 물류난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보장체제 강화로 발생한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도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퇴직자의 사회보장을 강화함에 따라 퇴직 노동자들이 조기에 복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를 계기로 노동시장에서 고령자층이 퇴출되고 있으며 현장업무가 요구되는 제조업, 운전기사, 음식점 점원 등은 인력 부족이 장기화하고 있다.
화학기업들은 다양한 역풍 속에서도 물류망을 변경하는 등 서플라이체인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인재 확보를 위해 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의 북미사업을 총괄하는 Asahi Kasei America는 미국 전역의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인사부문을 확충해 인재 채용‧육성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자동차, 경량화‧친환경 소재 수요 기대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8월 신규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자동차, 연료전지자동차(FCV)가 차지하는 비율을 2030년까지 50%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2021년 신규 자동차 판매대수 약 1500만대에서 전기자동차가 3% 수준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서해안, 동해안 등 일부지역 뿐만 아니라 시카고(Chicago) 등 중서부의 도시지역에서도 부유층을 중심으로 전기자동차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생산기업들은 선행하는 테슬라(Tesla)를 추격하기 위해 신형 자동차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애플(Apple)이 전기자동차를 출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등 다른 업종, 신흥기업의 진입이 잇따르고 있다.
북미 최대의 PP(Polypropylene) 컴파운드 메이저인 미쓰이케미칼(Mitsui Chemicals)의 자회사 Advanced Composite은 경량화 소재, 환경대응형 소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알루미늄 생산기업 UACJ는 애리조나에 자동차 범퍼 등에 사용하는 알루미늄 소재 공장을 신규 건설한 후 현지 자동차 메이저, 신흥 전기자동차 생산기업의 수요 호조에 힘입어 이미 수주 상한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와덴코(Showa Denko)는 자동차 전동화 및 전장화의 영향으로 방열 용도로 사용하는 세라믹스 소재 공급이 증가하고 있으며, 덴카(Denka)도 방열소재, 방열기판, LiB(리튬이온전지)용 도전조제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는 배터리용 분리막, 수지 컴파운드 등 자동차 전동화‧경량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공급하고 있는 가운데 핵심 수요처를 밀착 관리하는 KAM(Key Account Management) 체제를 강화해 시장의 니즈 파악, 생산제품 통합 등으로 자동차 관련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파나소닉(Panasonic)과 테슬라는 네바다(Nevada)에 LiB 공장을 합작으로 건설하고, 도요타(Toyota Motor)와 도요타통상(Toyota Tsusho)은 2021년 10월 미국에 신규로 합작기업을 설립하고 2025년 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도요타통상은 화학제품 및 전기‧전자 부문의 자동차 소재 SBU(Strategic Business Unit)를 중심으로 관련분야에 대한 투자를 포함해 서플라이체인 구축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토추상사(Itochu)는 2022년 4월 미국의 에너지‧화학 부문에 축전지를 포함한 전력‧환경 부문을 새롭게 설치하고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에도 인력을 배치해 원료 및 소재 취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배터리 시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는 경제적 안전보장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세계 각국이 공장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3대 메이저인 삼성전자, 인텔(Intel),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가 모두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어 설비투자가 완료되는 2024-2025년 반도체 소재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반도체 소재 생산기업들은 반도체 생산기업의 투자 계획에 맞추어 미국 투자를 확대할 것이 확실시된다.
건축자재, 주택 부족 현상이 호재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인구 증가가 계속되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도시에서 주변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주택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 연방저당권협회 패니메이(Fannie Mae)는 최근 주택 공급부족이 380만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주택 부족 현상은 신에츠케미칼(Shin-Etsu Chemical)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배관 파이프, 건축자재 등에 사용되는 PVC(Polyvinyl Chloride)를 생산하고 있는 자회사 신텍(Shintech)이 2021년 말 루이지애나 소재 신규 공장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2023년 말 완공을 목표로 증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의 자회사 Asahi Kasei Homes는 2021년 미국의 단독주택 배관공사 운영기업을 인수했고 반도체산업 집적으로 인구 증가율이 높은 애리조나에 초점을 맞추고 인수합병(M&A) 전략으로 사업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미츠비시케미칼(Mitsubishi Chemical)은 자동차부품, 건축자재에 투입하는 아크릴수지 원료 MMA(Methyl Methacrylate) 플랜트를 루이지애나에 신규 건설할 계획이다.
헬스케어, M&A‧설비투자 적극화
미국은 세계 최대의 헬스케어 시장으로 일본기업이 투자를 적극화하고 있다.
AGC는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21년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의 콜로라도(Colorado) 소재 유전자 치료제 공장을 인수했다.
후지필름홀딩스(Fujifilm Holdings)는 2025년까지 3900억엔을 투입해 미국, 영국, 덴마크에서 바이오 의약품 CDMO 설비를 가동하고, JSR은 2022년 미국과 스위스의 바이오 CDMO 설비 증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아사히카세이 자회사 Asahi Kasei Medical은 2021년 바이오 의약품 생산 분야에서 마이코플라즈마 시험 위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기업을 인수했다. Asahi Kasei Medical은 의료기기, 의약품 분야에서 M&A 등을 통해 미국에 경영자원을 적극 투입하고 있으며 헬스케어 영역의 본사 기능도 미국으로 이전할 방침이다.
도소(Tosoh)는 2021년 바이오 의약품 정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바이오 벤처기업 Semba Biosciences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으며 덴카는 2021년 말부터 파트너를 통해 항원검사 키트 판매를 시작했다.
탄소중립, CCS‧수소 관련 협업 잇달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순환경제 움직임이 가속화됨에 따라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구성하거나 미국기업과 제휴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미쓰이물산(Mitsui)은 2021년 세계 최대의 질소비료 생산기업인 미국 CF Industries와 미국에서 블루 암모니아(Blue Ammonia)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CCS(이산화탄소 포집·저장), EOR(석유 회수증진) 기술을 제공하는 덴버리(Denbury)와는 산업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를 유효 이용하는 Carbon Negative Oil 사업에 착수했다. 미츠비시상사는 컬프 만안에서 연료 암모니아를 생산하기 위해 덴버리와 이산화탄소 수송‧저장에 관한 주요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에어워터(Air Water)는 2021년 미국에서 수소 서플라이체인을 구축한다고 발표했으며, 자회사를 통해 캘리포니아에서 수소충전소를 개발‧운영하는 FirstElement Fuel에 투자하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셀라니즈(Celanese)와 함께 미국에서 바이오 에탄올(Ethanol)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도시에서 폐기된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가스 베이스 바이오 메탄(Methane)을 조달해 물질수지 방식으로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할 계획이다.
의류, 자동차용 등으로 친환경형 인공단백질 소재 Brewed Protein을 생산하고 있는 스파이버(Spiber)는 미국 곡물 메이저 Archer Daniels Midland(ADM)와 합작으로 2023년 미국에서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혁신기술 보유 벤처기업 탐색에도 주력
미국은 세계 최대의 벤처 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새로운 사업, 기술 창출을 목표로 하는 해외기업들의 주목받고 있다.
제온(Zeon)은 2022년 2월 실리콘밸리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Zeon Ventures를 설립했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혁신기술 등 유망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앞으로 3년간 5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쇼와덴코는 2022년 봄부터 노무라홀딩스(Nomura Holdings) 등이 실리콘밸리에서 진행하는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외부와 협업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인재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8년 일본 화학기업 가운데 일찍부터 CVC를 시작한 아사히카세이는 2021회계연도에 종료하는 중기 경영계획에서 23건에 달하는 신규 투자를 진행했으며 헬스케어, 소재 분야에서는 2-3건의 인수 후보를 확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Mitsubishi Chemical Holdings(MCH)는 천연섬유와 수지 복합소재를 생산하는 미국 벤처기업 Lingrove에 투자하며 가구, 자동차 내장재용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회하는 감축 효과를 실현하는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 소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은 보스턴(Boston), 실리콘밸리에 설치한 CVC를 통해 벤처기업, 학계의 신기술을 탐색하고 있다. 초기 기술을 검증하는 안건은 연평균 1700건에 달하며 10% 미만이 개발 프로젝트 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는 양극재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식물육, 배양육 등 대체 단백질, 재생의료에 사용하는 세포의 대량배양 기술, 이산화탄소 고정화, CR(Chemical Recycle) 등 차세대 신기술 탐색에도 주력하고 있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