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래스틱은 대표적인 석유화학제품으로 1869년 발명 당시 나무를 대체해 벌목을 줄여주는 친환경 신소재로 주목받았으나 150여년이 지난 현재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2024년 플래스틱 협약 체결을 준비하는 등 폐플래스틱 관련 환경문제 대응을 강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석유화학기업들은 플래스틱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해 리사이클(재활용) 기술 개발 및 사업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재활용 플래스틱은 현재 바이오 베이스 플래스틱, 생분해 플래스틱 등 친환경 플래스틱 중 가장 실용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며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는 글로벌 재활용 플래스틱 시장이 2023년 60조원에서 2027년 85조원으로 성장한 후 2050년 600조원에 달해 전체 플래스틱 생산량 중 60%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환경부 인증을 받은 탄소감축량 측정방법론에 따르면, 폐플래스틱 1톤을 열분해유로 재활용하면 탄소 배출량을 소각할 때보다 최대 2.7톤 줄일 수 있어 폐플래스틱 재활용이 글로벌 탄소 감축 트렌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시장은 CR 기술 중심으로 성장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화학사업 친환경 전환을 위해 MR(물리적 재활용: Mechanical Recycle)의 단점을 극복한 CR(화학적 재활용: Chemical Recycle)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MR은 폐플래스틱을 기계적으로 파쇄·압출해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재활용 과정에서 플래스틱 품질이 저하돼 재사용이 1-2회만 가능한 반면, CR은 고온의 열과 촉매 등을 활용해 기름 등 원료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품질 저하 없이 무한 재사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CR은 해중합, 열분해, 정제로 구분하며 국내 주요기업들은 주로 해중합과 열분해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열분해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2021년 최신 열분해 기술을 적용한 폐플래스틱 열분해유를 여수공장 석유정제공정 원료로 투입해 자원순환형 석유제품 및 프로필렌(Propylene), PP(Polypropylene) 등을 생산하는 실증사업을 시작했고 폐플래스틱 열분해유 5만톤 공장을 2024년 완공 후 생산능력을 100만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열분해 기술은 해중합과 달리 혼합 플래스틱도 적용이 가능하다.
LG화학은 당진에 2024년까지 고온 수증기로 폐플래스틱을 분해하는 초임계 열분해유 2만톤 공장을 건설하며 화장품 생산기업 코스맥스에게 재활용 고부가 합성수지를 공급하고 친환경 화장품 용기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에서 열분해유 적용 소재로 협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화솔루션은 2024년까지 폐플래스틱 열분해 및 후처리로 나프타(Naphtha)를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개발(R&D)하고 있으며, HD현대오일뱅크는 열분해유 베이스 나프타를 국내외 수요기업에게 판매하는 한편 열분해유 직접 생산도 검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울산 2공장에 약 1000억원을 투자해 폐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전용 해중합 공장을 건설하고 BHET(Bis-2-Hydroxyethyl Terephthalate) 4만5000톤을 생산하고 생산된 BHET을 투입해 다시 PET로 만드는 C-rPET 11만톤 생산설비를 2024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국내 유일의 폐플래스틱 재활용 캠페인 프로젝트 루프를 통해서는 자원 순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폐PET병을 약 400만개 회수하고 리사이클에 약 7만개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소셜 벤처기업 8사 지원, 약 7200명을 대상으로 한 자원 선순환 교육 등을 실시했다.
효성티앤씨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활용을 통해 나일론(Nylon), 폴리에스터(Polyester), 스판덱스 등 3대 화학섬유를 모두 생산하고 있으며 2022년 말부터 울산공장에서 나일론 리사이클 섬유를 생산하기 위한 해중합 설비 가동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바다에 버려진 폐어망을 고온·고압으로 분해해 나일론을 추출한 후 노스페이스, K2에게 공급해 재킷, 가방 등을 제작하고 있으며 블랙야크와 자원 선순환 시스템 확대를 위해 폐PET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섬유 개발·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삼양사는 폐어망 재활용 플래스틱으로 전기자동차(EV) 부품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2023년 9월 복합소재 전문기업 한국화이바와 전기자동차용 친환경 경량 배터리팩 케이스 공동개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고 컴파운딩 기술력으로 재생 플래스틱의 물성적 단점을 극복해 일반 플래스틱으로 제조했을 때와 동등한 수준의 배터리팩 케이스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밖에 에코크리에이션이 5월 플래스틱 열분해로 추출한 기름으로 디젤(Diesel) 발전기 가동에 성공하는 등 중소기업들도 폐플래스틱 재활용 사업에서 선전하고 있다.
SK, 세계 최대 재활용 클러스터 건설
SK지오센트릭은 울산에 세계 최대 재활용 클러스터를 건설하고 있으며 국내기업 최초로 열분해유에서 불순물을 없애는 기술을 도입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대표는 “울산은 플래스틱 수요가 많은 제조업이 집중된 중국, 동남아에 가까워 입지 차원에서도 큰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울산CLX(컴플렉스) 21만5000평방미터 부지에 건설하고 있는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는 매년 세계 최대인 32만톤의 폐플래스틱을 재활용해 23만톤의 완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며 이미 생산물량의 15% 이상을 선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플래스틱‧폐비닐을 고온에 녹여 깨끗한 나프타를 추출하는 열분해 및 후처리 기술, PET를 분자 단위로 분해해 기초원료로 되돌리는 해중합을 포함한 CR 공정, 폐플래스틱을 용매로 녹여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순수한 PP를 뽑아내는 초고순도 재생 PP 추출공정 등 3가지 기술을 모두 적용해 주목된다.
고순도 PP 추출공정은 미국 퓨어사이클(PureCycle), 해중합 공정은 캐나다 루프(Loop)와 합작으로 진행하고 열분해 및 후처리 공정은 자체 개발기술을 적용해 생산된 열분해유 중 일부를 울산CLX 나프타 분해 설비에 투입할 예정이다.
김기현 SK지오센트릭 PM은 “울산ARC 프로젝트는 3개 공정과 1개의 유틸리티 설비로 기존 MR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했던 소재까지 모두 재활용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울산ARC는 플래스틱 100% 재활용 달성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열분해유 관련 석유사업법 개정
정부는 석유사업법 개정을 통해 열분해유 사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폐플래스틱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그동안 연료로만 사용 가능했던 폐플래스틱 열분해유를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석유사업법을 개정했으며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석유화학 공정에서 열분해유 활용을 가능케 했다.
최근 염소 등 불순물을 제거하는 후처리 공정이 개발됨에 따라 석유화학 공정에서 열분해유를 활용한 플래스틱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열분해유에서 PP나 나프타 등을 추출한 후 새로운 플래스틱 원료로 사용하면 기존 원유 활용 대비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약 2배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미래연구원에 따르면, 폐플래스틱 재활용은 선별·분리, 과립화 등 전처리 공정을 포함한 모든 재생원료 생산공정에서 소각처리 대비 45-75%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처리 공정을 제외한 모든 CR 공정에서 천연자원 고갈이 기존 생산공정 대비 최소 18%에서 최대 0.02%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열분해유 도입 확대를 위해 SK지오센트릭의 열분해유 투입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승인하는 등 규제 정비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기존 목표보다 4년 앞당긴 2026년까지 폐플래스틱 열분해 재활용 비중을 10%까지 높일 계획이다.
화학연구원, 합성섬유 폐기물 원료 전환 “성공”
국내 연구진은 2023년 합성섬유 폐기물을 플래스틱 원료로 전환하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염료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폐합성섬유에서 재활용 원료를 분리하는 선별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조정모 화학연구원 화학공정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새로 개발한 기술로 특정 소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저가의 화합물을 활용해 혼합 폐합성섬유로부터 PET 소재만 화학적으로 선별할 수 있어 순환경제 카테고리에 폐합성섬유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분류된 폴리에스터 섬유를 저온분해해 합성 이전의 단량체 원료로 되돌리는 CR 기술까지 개발했다. 단량체는 화학 결합으로 고분자가 될 수 있는 단분자물질이며 플래스틱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미국, CR 투자 지원 본격화
미국은 CR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퓨어사이클(PureCycle Technologies)은 2023년 4월 오하이오에서 1억700만파운드(약 5만톤)의 리사이클 PP 생산설비를 완공한데 이어 5월 말 조지아 오거스타(Augusta)에 No.2 설비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오거스타 PP CR 설비는 개발청으로부터 생산라인 1개에 대한 자금 지원을 받았고 생산라인을 8개까지 확대해 전체 생산능력을 10억파운드(약 45만톤)로 확대할 예정이다.
퓨어사이클은 오염됐거나 불순물이 포함돼 리사이클이 어려웠던 폐플래스틱에서 PP 용매를 사용해 추출하는 방식으로 신규 생산제품과 동등한 순도를 가진 UPRPP(Ultra Pure Recycled PP)를 생산하고 있다.
엑손모빌(ExxonMobil)은 2022년 텍사스 베이타운(Baytown)에 독자 CR 기술인 Exxtend를 활용하는 최초의 상업설비를 완공했다.
Exxtend는 혼합 폐플래스틱을 원료로 에탄(Ethane), 프로필렌 등을 얻는 기술이며 화석연료 베이스 생산제품과 마찬가지로 스팀 크래커나 중합설비를 거쳐 PE(Polyethylene), PP 등을 생산할 수 있고 분자 수준까지 되돌려 리사이클하기 때문에 품질 역시 화석연료 베이스와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부 환경단체들은 CR이 에너지 소비 및 화학물질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환경부하를 가하는 프로세스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화학기업들은 CR 설비를 폐기물 처리시설과 동일하게 규제하면 리사이클 보급을 막는 것이고 정책 결정자들이 CR의 지속가능성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일부 주들은 CR 설비를 생산설비로 간주하고 폐기물 처리시설과 달리 규제를 처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17년 플로리다를 시작으로 2023년 4월 인디애나가 추가돼 24개주가 CR 보급에 적극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화학협회(ACC)가 2023년 초 실시한 소비자 의식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8%는 CR을 폐기물 처리가 아닌 리사이클로 인식하고 있는 등 플래스틱 순환에 유효한 방법이라는 인식이 조성돼 보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MCC, CR 플랜트 2만톤 건설
일본에서는 미츠비시케미칼(MCC: Mitsubishi Chemical)이 폐플래스틱 리사이클을 확대하고 있다.
미츠비시케미칼은 2023년 말 완공을 목표로 이바라키(Ibaraki)에 CR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원료용 페플래스틱 회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CR 플랜트는 원료 창고, 전처리 설비, 유화설비, 충진설비, 탱크, 분석설비 등으로 구성하며 리파인버스(Refinverse)가 수거·분류를 담당하는 1차 처리를 맡아 압축 더미(Bale)로 만들어 2.5일치 처리량에 달하는 약 150톤을 창고에서 보관할 계획이다.
미츠비시케미칼은 영국 무라(Mura Technology)의 초임계수 기술을 활용해 화학적으로 액화시켜 유화처리하며 임계점 이상으로 가온, 가열돼 액체, 가스 성질을 모두 지닌 초임계수가 용융 플래스틱 분자 구조를 분해함으로써 탄화수소유와 가스를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플래스틱 생성유 수율은 90%에 달하며 탄화수소유는 경질분, 중질분으로 분리해 경질분은 파이프라인으로 미츠비시케미칼 NCC(Naphtha Cracking Center)에 투입하며, 중질분은 에네오스(Eneos)의 상압증류장치에 투입할 방침이다.
원료로는 폴리올레핀(Polyolefin) 및 PS(Polystyrene) 리치 플래스틱 등을 사용하며 설비 부식을 일으킬 수 있는 PVC(Polyvinyl Chloride)는 최대한 배제할 방침이다.
미츠비시케미칼은 2011년 이바라키 SM(Styrene Monomer) 플랜트를 가동 중단해 사업장 내부에 3만평방미터에 달하는 유휴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레이, 폐PET 해중합‧정제 신기술 개발
도레이(Toray)는 프랑스에서 PET CR을 추진하고 있다.
도레이는 프랑스 필름 자회사 Toray Films Europe(TFE)을 통해 프랑스 국영 IFP 신에너지 연구소(IFPEN), Axens, Jeplan이 개발한 폐PET 해중합·정제기술을 활용한 재활용 설비 도입에 나서고 있다.
현재 Jeplan을 통해 기타큐슈(Kitakyushu) 파일럿 플랜트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상업화 가능성을 검증한 후 PET 모노머는 미시마(Mishima) 공장에서 중합공정 실증을 거쳐 프랑스 기존 중합 플랜트 개조 및 신규 공장 건설을 통해 2026년 상업화할 예정이다.
2026년 가동 예정인 모노머 생산능력 3만톤급 No.1 프로젝트에 총 2억유로(약 2816억원)를 투입하고 이후 No.2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능력을 8만톤 수준까지 확대한다.
프랑스 프로젝트를 본궤도에 올려놓은 다음 다른 글로벌 필름 사업장으로 프로젝트를 확대할 예정이며, 특히 대규모 중합공장을 갖춘 한국, 일본 프로젝트 확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은 플래스틱 패키지 중 재생소재 함유량을 2030년까지 30%, 2040년까지 65%로 확대할 방침이어서 고품질 재생소재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유럽 PET병 생산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착색해 공급하는 MR에 한계를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레이 등이 개발한 신기술은 폐PET병을 PET 모노머 BHET로 해중합해 안료 등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PET 순도 90% 이상 병을 경제적으로 재활용 가능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PET 모노머로 재활용한 후에는 TFE가 일부를 PET필름 원료로 투입하나 대부분은 PET병용으로 공급해 최종 사용자를 통해 다시 원료로 회수되는 수평 리사이클을 실현할 계획이다. 현재 폐PET 조달을 위해 프랑스 외 유럽 각국과 계약을 체결했고 프랑스 내 조달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김진희 기자: kj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