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 불가피 … 일본은 스마트팜 분야 집중
정유기업들은 석유정제 의존에서 탈피해 신 성장동력을 육성해야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석유정제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경기 동향, 국제유가에 따라 호황, 불황이 분명한 편이며 국내 정유 4사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함께 2020년 영업적자 5조500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2021년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가 흑자 전환하고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으나 대부분 석유화학 사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2022년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재고평가손실이 확대되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2023년 영업이익이 1조9034억원으로 전년대비 51.4%, 에쓰오일은 1조4186억원으로 58.3%, HD현대오일뱅크는 6167억원으로 77.9%, GS칼텍스는 1조6838억원으로 58.0% 급감하는 등 4사 모두 수익이 대폭 악화됐다.
정유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 변동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탄소중립 트렌드와 함께 석유제품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기존 석유정제 사업을 축소하는 대신 친환경 에너지 분야를 확대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생존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등은 정유기업의 신규 사업 아이디어로 이산화탄소(CO2) 포집‧사용‧저장(CCUS), 바이오 에너지 도입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는 재생에너지가 앞으로도 높은 가격을 형성하며 화석연료 대체가 시장 기대만큼 진행되지 못하고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압박 강화에도 석유제품 수요가 일정수준은 유지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정유 4사 역시 2010년대 중반 고수익 행진을 계속한 석유화학 사업 진출에 집중한데 이어 현재까지도 기존 생산설비를 유지하며 석유정제 사업과 보완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석유화학 확대에 주력함으로써 친환경 사업 확대는 미진한 편으로 평가된다.
다만, 석유화학 사업은 기존 석유화학기업조차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수년 전부터 고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수익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이 석유정제-석유화학 일체화 프로젝트를 꾸준히 확대하는 가운데 정유기업의 석유화학 진출이 드물었던 일본마저 메이저 에네오스(Eneos)가 석유정제-석유화학 연계를 검토함에 따라 국내 정유 4사는 석유정제에 이어 석유화학 사업에서도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일본의 원유 소비량이 2024년 하루 330만배럴로 전년대비 3% 감소하고 이후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영향이 더해지면서 2050년 245만배럴로 격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정유기업들은 일본의 원유 소비량이 1996년 570만배럴을 정점으로 2022년까지 연평균 2% 감소함에 따라 이미 수년 전부터 석유정제 축소를 검토했고 에네오스가 2023년 와카야마(Wakayama) 정유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이데미츠코산(Idemitsu Kosan) 역시 야마구치(Yamaguchu) 정유공장 가동중단을 결정했다.
양사 모두 한국, 인디아에 비해 석유정제능력이 작고 수소화 분해 등 중질 연료유 업그레이드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석유정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신규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석유정제‧석유화학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산 셰일가스(Shale Gas) 베이스 에틸렌(Ethylene) 유입 급증에 대한 우려가 확대됨에 따라 국내 4사처럼 석유화학에만 집중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에네오스는 2021년부터 추진한 스마트팜(식물공장) 사업에서 최초로 흑자를 달성함에 따라 신규 공장 건설 및 해외진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치바현(Chiba)에서 가동하고 있는 식물공장은 LED(Light Emitting Diode) 조명을 활용한 100% 인공광 시스템으로 주요 재배 작물 상추와 프릴아이스 상추의 하루 생산량이 3만개(약 4톤)에 단위면적당 재배량은 일반 노지 재배의 180배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전체 상추 생산량이 연간 50만-55만톤으로 큰 변함이 없고 이미 상추 스마트팜이 300여곳 이상일 뿐만 아니라 에네오스가 후발주자여서 해외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팜은 식물공장을 포함해 노지, 온실 재배 등 각종 농업 현장에 ICT(정보통신) 기술을 도입하는 분야로 다양한 분야에서 신규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수화학이 2018년 그린바이오 사업 출범 이래 해외를 중심으로 스마트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식물공장 기반 기능성 천연물 생산 및 원료 표준화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기존 온실 중심에서 수직형 식물농장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작물보호제 생산기업 성보화학은 자회사 위드아그로를 통해 식물공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팜한농은 디지털 파밍 솔루션을 통해 스마트 농업 확산에 착수하는 한편 스마트팜 컨설팅 사업에 진출했다.
국내 정유 4사 역시 에네오스나 이수화학의 사례와 같이 기존 사업 영역을 벗어나면서 석유화학 사업에 비해 미래 지향적이고 수익 창출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 신규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추진한 석유화학 투자 확대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단기적인 효과가 컸으나 중장기 수요 감소가 불가피한 것은 석유정제 사업과 유사하기 때문에 생산설비 및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으면서 성장 잠재력이 큰 SAF(지속가능한 항공연료) 등 바이오 연료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야 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AF는 기존 원유 베이스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량을 80% 감축할 수 있으며 EU(유럽연합)가 전체 항공유 중 SAF 포함 의무비율을 2025년 2%에서 2050년 70%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글로벌 시장이 2021년 7억4550만달러에서 2025년 100억달러, 2050년 215억달러로 대폭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내 정유 4사 중에서는 SK이노베이션만이 SAF 생산 계획을 공개했고 나머지 3사도 바이오 연료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으나 EU 규제에 맞춘 정부 지원이 선제돼야 투자 가속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강윤화 책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