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범용을 버리고 특수화해야 한다는 점을 부인하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석유화학기업들이 스페셜티화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제시하라면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실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최근 들어 정밀화학을 비롯해 스페셜티 소재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늦었지만 다행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범용 중심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특수제품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중국의 자급화와 투자 과잉으로 공급과잉이 심화돼 고전하고 있으며 범용 석유화학제품 생산 비중을 낮춤으로써 수익성이 낮은 대량생산 체제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정밀화학 또는 스페셜티 소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경영전략의 장기화, 연구개발 체제 전환, 전체 인력의 의식 개혁 등이 필요하나 하나같이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첫째, 국내 화학기업들은 오너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몇몇 중견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영진이 교체될 때마다 장기 비전이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거나 버리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기 목표나 방법을 변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나 장기 비전과 목표를 바꾸는 것은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중간 간부들까지 받아들이기 힘든 현상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일본 화학기업들은 3년 주기의 단기 경영계획을 설정함은 물론 10년 주기의 중기 경영계획, 30년 주기의 장기 경영계획과 비전을 설정함으로써 경영진이 바뀌더라도 단기 경영계획만 바꿀 뿐 중장기 비전은 흐름을 반영해 보완에 그치고 핵심적인 전략은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페셜티화에 성공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둘째, 연구개발 체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뚜렷하다. 국내 화학기업들은 대부분 장기 목표와 비전이 없는 가운데 당장 필요한 응용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반면, 일본 화학기업들은 중장기 목표와 비전에 맞추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경영진이나 연구소장이 바뀌어도 기존 목표를 버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목표만 추가에 그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기·전자, 자동차, 배터리용 고부가가치 특수 소재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요인이며, 제약을 비롯해 헬스케어 부문으로 확장해 범용 석유화학의 한계를 커버하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 운용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이 자체 연구소를 중심으로 응용제품 개발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기초 개발능력을 바탕으로 기초화학 연구를 활성화하고 자체 연구소에 그치지 않고 외부 벤처기업과 협력함으로써 개발을 효율화하고 있다.
화학기업 전반의 안이한 의식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석유화학은 나프타 베이스의 코스트 경쟁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수익에 취해 장기 비전 설정에 소홀할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체제 전환을 시도해도 반발하는 등 구조개혁을 거부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의 연봉이 중요할 뿐 회사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고 할까…
석유화학기업이 살아나는 길은 범용을 버리거나 축소하고 스페셜티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진부터 일반 사원까지 전체가 의식을 개혁하는 자세가 선행해야 한다. 정신적 개혁이 생존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