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화학기업들의 최근 관심사는 단연 스페셜티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범용 화학제품 중심으로 생산해도 잘 먹혔으나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자급화를 내세워 대대적인 신증설을 단행하면서 범용으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범용 석유화학제품 투자를 확대해 아시아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음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페셜티에도 투자함으로써 화학산업 전체를 리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일본이 앞서가고 있는 스페셜티 화학제품을 자급화함으로써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이 밑바닥에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스페셜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스페셜티 진입을 외치고는 있으나 여러 가지로 준비가 부족하고, 여러 걸림돌 중에서도 경영진의 자세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오늘날의 위기에 처한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범용 중심으로 신증설 투자 경쟁을 벌였고 중국의 투자 확대와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 공급과잉이 유발됐기 때문이다.
재벌들이 순위 경쟁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매출이고 매출 크기에 따라 위상이 좌우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화를 부른 것이다. 최근에는 중소˙중견 화학기업들조차도 대기업으로 대우받기 위해 매출 확대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매출액 500억-600억원이면 1000억원을, 2000억-3000억원이면 5000억원을, 5000억-6000억원이면 1조원을 목표로 투자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매출 확대 경쟁 끝에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매출 확대에 목을 매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국내 경영계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서열 의식을 버리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매출액이 아니라 순이익이나 순이익률을 투자의 기본 철칙으로 삼는 경영원칙이 자리를 잡기 전에는 스페셜티의 성공은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스페셜티는 범용과는 다르게 수요가 많지 않고 매출도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신 수요가 꾸준하고 공급가격이 높으며 수익률도 매우 높다. 범용이 국제유가나 시장 흐름에 따라 수익성이 좌우되는 반면, 스페셜티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본 화학기업들이 석유화학 불황기에도 적자를 내지 않고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일본은 일찍부터 전자˙자동차용 화학소재를 중심으로 스페셜티에 눈을 떠 반도체, 배터리, 우주˙항공용으로 개발 폭을 넓혀왔으며 오늘날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도 내수를 넘는 생산능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통합˙감축으로 대응하고 다운스트림인 플래스틱이나 정밀화학기업들과 공존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수익과 적자를 최소화하는 대신 스페셜티 개발을 통해 수익을 커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스페셜티 진입을 목표로 한다면 매출이라는 껍데기를 버리고 수익성을 최우선시하는 전략적 전환이 시급하다. 매출도 확대하고 수익성도 담보할 수 있는 화학 사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범용 자급화를 넘어 스페셜티 육성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잘못하면 정밀화학˙무기화학에 이어 석유화학과 스페셜티까지 중국에 넘겨줌으로써 화학산업 전체가 중국에 예속되는 비극을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스페셜티는 화학산업 전체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