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120달러에서 30달러 안팎으로 폭락하고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톤당 900달러대에서 300달러대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제품 가격은 찔끔 하락하는데 그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수급과는 상관없이 가격을 억지로 올리려는 움직임이 일상화되고 있다.
폴리에스터 원료로 사용되는 MEG는 톤당 900달러대에서 600달러대로 하락하자 글로벌 메이저인 MEGlobal을 중심으로 가동률을 감축하거나 일부 플랜트의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가격인상에 나서고 있다. MEGlobal에 그치지 않고 타이완의 포모사 계열사가 일부 플랜트의 가동을 중단했고 국내에서도 롯데케미칼이 가동률을 낮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론 수익성이 악화돼 생산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동률을 낮추거나 생산을 중단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MEGlobal을 중심으로 Sabic, Shell 등은 현물시세가 6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시아 예약가격으로 700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
그렇다고 원료 코스트에 상관없이 현물시세가 폭등하면 계약가격을 현물시세보다 인하해 수요처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물시세 이상으로 올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이다. 현물시세가 낮으면 계약가격을 무리하게 인상하고 현물시세가 높아도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횡포를 일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석유화학기업들의 무리한 가격인상 작전은 MEG에 그치지 않고 있다. PS 및 ABS의 원료로 사용되는 SM은 국내기업들을 중심으로 봄철에 정기보수를 집중시킴으로써 가격폭등을 유발하는 작전을 몇 년째 지속하고 있으며, 에틸렌 또한 3-5월 정기보수에 맞춰 가격이 대폭 상승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SM은 원료 벤젠의 정기보수 일정에 맞춰 가동을 중단하고 PS, ABS 역시 SM의 보수일정에 따라 가동률을 조정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정기보수를 집중시킴으로써 수급타이트를 유발시키고 가격폭등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소비국인 중국기업들도 한국, 일본, 타이완의 전략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아 갈수록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MEG 역시 중국이 석탄화학 베이스 생산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메이저들의 폭등 유발전략이 잘 먹혀들지 않고 있으며, 석탄화학 베이스의 품질이 향상되고 있어 머지않아 엄청난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에틸렌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공급부족 해소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하나 미국이 셰일가스 베이스 생산을 확대하고 있어 무리한 가격인상 전략이 먹혀들지 않을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일반적이지 않는 가격인상 전략을 일상화하고 있는 것은 일반 소비재가 아니라 중간원료로 다운스트림이 원료가격 상승을 빌미로 가격을 올림으로써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끼리끼리 정신으로 뭉쳐있기 때문으로, 결국 피해는 최종소비재를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떠안게 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공정경쟁 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다. 국제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불공정행위를 단속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일관하면서…
경제정책의 중심이 대기업에 맞추어짐으로써 젊은 청년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듯이, 공정정책 또한 대기업 봐주기로 일관하면 일반 소비자들의 후생은 백지상태로 내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