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놓고 말들이 많다. 특히, 정부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양적완화 정책을 들고 나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면서…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등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 고위관료들은 한결 같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조합한 한국판 양적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조선과 해운의 구조조정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가능한 한 정책수단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한국은행에게 돈을 풀라는 압박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수출입은행 증자, 한국은행의 산업은행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 인수와 함께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한국은행의 산업은행 채권 인수, 한국은행의 산업은행 출자 등을 강권할 태세이다. 수출입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해 자본 확충이 시급하고 산업은행도 각종 정책금융을 남발한 나머지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자본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의 부실을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메꾸어주는 방식의 양적완화를 찬성하는 국민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도 찬성하는 국민은 손을 꼽을 수 있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가계부채가 어마어마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판에 재벌기업의 경영 잘못을 중앙은행이 책임짐으로써 결국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꾸는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은 성공할 수도 없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재벌기업 경영진과 경영을 좌지우지한 오너, 그리고 별 안전장치도 없이, 제대로 된 타당성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거액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결코 국민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재벌기업을 구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풀었고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가계부채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대출금 상환을 거부하면 어찌할 것인가? 주택담보 대출이라고는 하나 상당부분은 주택 구입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소비에 지출한 것이 분명하니 불가능하다고 거절할 수 있겠는가?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까지 치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운운하면서도 책임지는 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해당기업의 경영진이나 오너가 경영을 잘못했으니 책임지고 물러남은 물론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소각 처리해 경영이나 소유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나서는 것도 아니다. 또 정부 관료들이 정책적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준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에 상당하는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왜 한국은행이 들러리 신세로 전락해야 하는지, 왜 국민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이나 해운이 망하면 해당기업에 그치지 않고 하청기업이나 관련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부실기업에 의존했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면 스스로 책임질 일이고,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고는 하나 부실기업에서 일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아 챙겼다면 노동자도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 바로 경영진, 오너, 금융기관, 그리고 노동자라고 단언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강변할 수 없다면 책임을 확실하게 추궁한 후에 구조조정 방안을 논해도 늦지 않다.
한국은행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