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산업이 기로에 선 느낌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보복을 노골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경제가 의외로 침체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보복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근본적인 불황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석유화학은 중국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아 중국 수요 감소에 사드 보복이 겹치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1990년대부터 외쳐왔지만 극히 제한적인 성과에 그쳤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측면에서 걱정이 태산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국내수요가 크지 않아 생산량의 50% 안팎을 수출하는 대외의존형 구조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신흥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할 때는 수출이 어렵지 않아 대량생산을 통한 코스트 경쟁력 향상이 통했지만 최근과 같이 글로벌 경제지형이 급변할 때는 수출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해 노후 플랜트 폐쇄와 통합을 단행함으로써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수에 최적화된 생산체제로 재편하면서 전자, 반도체, 자동차, 모바일 소재를 적극 개발하는 특화전략을 실행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1980년대 말 투자자유화를 기점으로 경쟁적 신증설 투자를 반복함으로써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기형적인 구조로 발전했으나, 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직면했을 때도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한 영향으로 별 어려움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해 2017년에는 6%대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고, 실제적으로도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봄철 정기보수 시즌이 돌아오면 예상외의 폭등세를 거듭하고 여름철 비수기에 접어들어서도 하락세가 크지 않았던 국제가격이 2017년 들어서는 정기보수 시즌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상승세가 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참 강세를 나타내야 할 3월에도 중순부터 폭락세로 전환되는 이변이 연출되고 있다.
OPEC이 국제유가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산유쿼터를 줄였음에도 55달러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그렇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셰일오일을 비롯해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50달러가 붕괴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
사우디·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이 원유, 석유정제에서 나아가 석유화학 투자를 확대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유도제품 및 특수소재 생산으로 발전해 중동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 시장을 커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미국은 셰일 베이스 에틸렌·PE 신증설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2017년 가을부터 중국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를 넘어서 경제성장률이 3-4%로 곤두박질치는 경착륙 가능성이 엿보이고 미국과의 정치·외교 및 경제적 마찰을 회피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국내 화학산업이 3각 또는 4각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글로벌 정치·경제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세와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드 보복에도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고부가·특수화가 진척되지 않고 있고, 대외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데 있어서도 정부를 쳐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