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재의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건물이 대형화되면서 화재 및 안전사고에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영국 런던의 고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사고가 잘 증명해주고 있다.
제2의 대처 수상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등장한 테리사 메이 수상이 물러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여론을 악화시킨 것이 바로 6월14일 런던 서부의 24층 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이다. 4층에서 발생한 조그만 화재가 아파트 전체를 전소시킬 정도로 대형화됐고 20-30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소방당국의 발표를 뒤로 사망자가 100명이 넘을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메이 수상이 불신임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것은 화재현장을 뒤늦게 방문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았으며, 사망자를 비롯한 피해자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해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메이 수장이 집권한 후 긴축정책을 강화하면서 서민주택 정책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화재가 난 아파트를 개량한 것이 메이 수상의 긴축정책과는 상관이 없지만 개량과정에서 불에 잘 타는 건축자재를 사용한 것이 밝혀지면서 영국 정부를 질타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4층의 한 집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폭발해 대형 화재로 번졌으나 영국에서 연간 300건 정도에 달한다는 냉장고 폭발사고보다는 1974년 건설돼 개량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건물외관의 단열·미관자재가 불에 잘 타는 알루미늄 베이스 패널이어서 불쏘시게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16년 끝난 개량공사는 총 870만파운드(125억원)를 들였음에도 콘크리트 벽에 보온 단열재를 덧대고 25-30미리 간격을 띄운 뒤 최종 외장 마감재를 붙임으로써 마감재와 단열재 사이의 공간이 굴뚝처럼 불길을 옮기는 역할을 했고 단열재와 외장마감재도 불연기능이 전혀 없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대형 건축물 및 아파트의 화재사고에는 반드시 단열재 및 마감재가 등장한다. 마감재로 공급단가가 아주 낮은 화학소재에 스티로폼을 채운 샌드위치 패널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대형 화재사고에 화학소재와 스티로폼이 등장하지 않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대형 화재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샌드위치 패널 대신 페놀 폼을 사용하거나 무기단열재로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열재를 비롯한 건축자재 규정을 마련하는 방법을 놓고 논란이 일상화되고 있다.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가 공개적인 테스트 및 의견수렴을 통해 단열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기업의 로비를 받고 특정제품에 맞춰 규격을 설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단열규격을 일반적으로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제품만 가능하고 경쟁제품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특정 대기업이 단열재를 개발하면 개발제품에 맞춰 단열규격을 설정한다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대체적인 하소연이다.
화학저널과 켐로커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건설교통부의 일방적인 행정행위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해당기업을 시켜 기사를 정정하라,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등 협박까지 일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건설교통부의 오만하고 방자한 태도는 언론의 건설적 비판기능을 위축시키는 일탈행위로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