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 이웅렬 회장이 갑자기 회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폭탄선언을 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배경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2020년 상반기에 창업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으로 미루어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문가 40명 정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거나 1년간 더 공부한 후 창업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어느 정도 인식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국내에서 나올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거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천재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강조한 것으로 보아 AI(인공지능)나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대된다.
하여간 부친으로부터 코오롱그룹을 물려받아 23년간 맡아온 회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은 재벌그룹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산업계 종사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화학산업 관계자들은 코오롱그룹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매우 궁금해 하고 있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회사가 고꾸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거나 “회사의 걸림돌이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고 말한 뒷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다.
글로벌 화학 메이저인 듀폰과 벌인 아라미드 특허 소송을 잘 마무리했으나 소송과정에서 어느 정도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것은 아닌지, 생명과학 사업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어서 고민이 깊어진 것이 아닌지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코오롱그룹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 사업은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했지만 눈 뜨면 달라지는 세상에 리더가 없는 재벌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섬유 사업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SAP 사업은 메이저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LG화학에게 매각했으며, 석유수지를 비롯한 수지 사업은 일본과 같이 고부가가치화하지는 못했을망정 그런대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EP, 수처리, PET필름도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경쟁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라든가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듯한데 이제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는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코오롱그룹을 발전시키지 못한 책임감을 통감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코오롱그룹 직원들도 구멍가게가 모여 재벌그룹 행세를 하고 있지만 뭐 하나 내세울만한 사업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고 하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코오롱그룹을 방치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외아들인 코오롱인더스트리 이규호 전무에 대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국내 재벌그룹의 특성상 선장 없는 배가 산으로 오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웅렬 회장의 실험이 성공해 코오롱그룹이 한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작용할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질지 화학산업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