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산업은 1980년대 후반 중국수출 기치를 내걸고 대산단지가 들어서면서 공급과잉으로 전환됐고 IMF 경제위기, 대산단지 구조조정 시기를 지나 2010년 이후 20만-30만톤을 증설하는 디보틀넥킹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201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이상으로 반등한 가운데 대한유화의 증설에 이어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이 생산능력 확대를 본격화하고 정유3사까지 에틸렌(Ethylene) 295만톤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공급과잉 확대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정유3사가 석유화학 설비를 가동하는 2021년 이전에 공급과잉 심화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고, 정유기업들은 원가압박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LG화학, 여수 에틸렌 80만톤 증설 대응 “파장”
LG화학은 정유3사의 석유화학 투자가 가시화되자 제2차 세일(Shale) 혁명이 오기 이전인 2021년까지 에틸렌 80만톤을 증설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LG화학은 2019년 대산단지의 에틸렌 생산능력 23만톤 증설과 함께 POE(Polyolefin Elastomer) 20만톤 플랜트를 건설하는데 이어 2021년 여수단지에 에틸렌 생산능력 80만톤의 NCC(Naphtha Cracking Center)를 비롯해 폴리올레핀(Polyolefin) 80만톤을 확대할 계획이다.
총 투자액은 대산단지 6700억원, 여수단지 2조6000억원으로 3조원이 넘고 폴리올레핀은 POE나 고부가 PE(Polyethylene)라고 밝혀 스페셜티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은 현대오일뱅크와의 합작으로 대산단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롯데케미칼은 2018년 여수단지의 에틸렌 20만톤을 증설한데 이어 미국에서는 액시알(Axiall)과 합작한 에틸렌 100만톤의 ECC(Ethane Cracking Center)를 2019년 가동할 예정이다. 100% 자체 투자보다는 합작을 선호하고, NCC에서 ECC로 원료를 다양화하는 등 범용이지만 원가를 낮추고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한화케미칼도 한화토탈이 9000억원을 투입해 대산단지에서 에틸렌 31만톤을 증설하고 HDPE(High-Density PE)/LLDPE(Linear Low-Density PE) 스윙 30만톤, PP 40만톤을 2019년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한화케미칼은 석유수지 5만톤, PVC(Polyvinyl Chloride) 13만톤 등 수익성 높은 범용 폴리머에 투자를 집중한다.
정유기업들은 BTX를 넘어 올레핀까지 참여함으로써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고, 아울러 저가 원료를 활용함으로써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 범용 석유화학제품에서 경쟁과열을 확대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LG화학은 스페셜티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차별화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고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은 영업, 마케팅 경쟁력을 바탕으로 범용에서 경쟁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환경규제 강화에 구조 개혁은 “단기 긍정요인”
중국의 환경규제 강화도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에게 중장기적 위험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소료왕국(塑料王國) 즉 플래스틱 차이나라는 다큐멘터리로 시작된 중국의 폐플래스틱 수입규제는 2018년 석유화학산업의 중요 화두로 떠올랐다.
폐플라스틱 공장에 사는 사람들이 지독한 연기와 액체를 먹고 마시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중국인들은 충격을 받았고 결국 중국은 2016년 735만톤에 달했던 폐플래스틱 수입량을 2018년 상반기에 58만톤으로 줄였고 2019년부터는 아예 수입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유럽 및 일본은 폐기물 처리방안을 고심해야 했지만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수출 증가를 만끽할 수 있었다.
PE는 2018년 상반기 중국 수출량이 694만톤으로 2017년 상반기 553만톤을 크게 웃돌았고 GPPS(General Purpose Polystyrene)도 32만톤에서 46만톤으로 14만톤 증가했다.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역시 81만톤에서 98만톤으로 늘어났다.
ABS는 2018년 상반기에 중국의 4대 가전제품 생산량이 10.9% 증가함에 따라 수출이 증가한 반면 PE 및 GPPS는 폐플래스틱 재활용 규제에 따라 오리지널 수지 사용량 증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P-X(Para-Xylene)도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병 재활용이 어려워짐에 따라 오리지널 수지 수요가 증가해 중국 수출이 호조를 나타냈고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 가동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면, 유럽은 상황이 크게 달랐다.
유럽연합(EU)은 플래스틱 폐기물 배출량 2500만톤 중 30%를 재활용하고 70%를 수출하며 중국수출 비중이 87%에 달하는 가운데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규제함으로써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는 재활용률을 55%로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5가지 핵심의제에 대한 구체적 일정과 가이드라인을 2019년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중국이 화학업종에 대해 이전·개조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고 있다.
2017년 8월 국무원 판공청 고시에 따라 안전과 위생방호거리 기준 미달 화학제품 생산기업은 원지개조, 규범화된 공업단지로의 이전이나 퇴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정명령을 받은 중소형 및 대형은 2022년 말, 대형 및 특대형은 2025년 말까지 모든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며, 현재는 지방정부가 화학제품 생산기업을 평가해 개조, 폐쇄, 이전 대상을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중국 무역전쟁 심화 “수출장벽”
미국-중국의 무역분쟁도 국내 석유화학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7월4일 1차로 산업자재 818개 품목에 관세 10%를 추가 부과하기 시작했고 9월4일 2차로 IT(정보통신) 관련 279개 품목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1-2차에 걸쳐 중국산 수입액 2000억달러 상승을 규제하고 있다.
G20 정상회담에서 2019년 2월 말까지 수입규제를 확대하지 않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2019년 3월 시행할 3차 조치가 발효되면 중간소재 5745개 품목이 해당돼 중국에는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중국 무역마찰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에게는 단계적으로 3가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단기적으로 미국에 대한 중국의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면 중국의 성형가공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됨으로써 국내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일부 감소할 수 있고, 중기적으로는 미국수출 감소로 중국 내수가 위축되면 경기침체를 불러 석유화학 수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급률이 상승하고 있는 중국과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앞세우는 미국이 한국산 화학제품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해 최악의 수출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2018년 현재 한국산 수입규제 대상품목 15종 중 11개가 화학제품이고, 특히 2017년 SM(Styrene Monomer)을 반덤핑으로 판정한데 이어 벤젠(Benzene), P-X 등 아로마틱 체인으로 수입규제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도 철강 및 금속에 이어 2016년부터 합성고무, 가소제, PET 수지 등 한국산 화학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 가속화될 무역전쟁의 서막이 울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원료 다양화에 수출 다변화 “절대적”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의 중유가 시대에 재진입하고 정유기업들이 NCC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중국 무역마찰 심화, 중국의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미래가 밝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은 2020년부터 셰일가스 2차 혁명을 타고 ECC 베이스 에틸렌 998만톤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2022년부터 투자하는 ECC는 모두 에틸렌 생산능력이 100만톤 이상으로 타이의 PTTGC(PTT Global Chemical), 쉘케미칼즈(Shell Chemicals), 엑손모빌(ExxonMobil), 사빅(Sabic), 캐나다 노바케미칼(Nova Chemical) 5사만 840만톤에 달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목적생산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에틸렌 생산능력 중 MTO(Methanol to Olefin)/CTO(Coal to Olefin) 비중을 2016년 15%에서 2022년 20%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도 에틸렌 생산능력 중 ECC 비중이 2016년 70%에서 2022년 78%로 높아진다.
프로필렌은 프로판(Propane) 의존율이 높아져 2022년 기준 중국은 17.2%, 미국은 10.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최대 수요시장인 중국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은 합성수지 자급률이 2017년 75.4%로 올라섰고, 합섬원료도 MEG(Monoethylene Glycol)를 제외하면 이미 8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중국수출 의존도는 여전히 높아 합성수지는 전체 수출량 중 59%, 합성고무는 52%를 중국으로 내보내고 있다.
합섬원료는 38%로 낮은 편이지만 PTA가 반덤핑 규제를 받고 있고 CPL(Caprolactam)은 국내 생산능력이 27만톤에 불과하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판단되고 있다.
중국의 자급률 상승에 경제 후퇴 가능성을 고려하면 국내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타격을 받기 이전에 새로운 수출시장을 찾을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스페셜티, 장기 성장동력 확보 “필수요건”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장기 성장을 위해 바스프(BASF), 솔베이(Solvay) 등 150년 이상 생존한 글로벌 화학기업들의 스페셜티, 다운스트림 강화 전략을 분석하고 통찰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8년 3분기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대로 상승하자 국내 석유화학 6사의 영업이익률은 10%대 초반으로 급락했으나 스페셜티 화학기업인 솔베이는 여전히 20%대의 높은 수익률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부터 2018년 3분기까지를 분석해도 화학산업 체인 전체를 관여하고 있는 바스프는 영업이익률이 14%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고, 미드·다운스트림에 집중한 다우듀폰(Dow- DuPont)도 2017년 20.3%에 이어 2018년 3분기에도 19.0%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했으며, 스페셜티에 집중한 솔베이는 2018년 3분기 영업이익률이 21%로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국내기업들은 원료 다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이유로 신규 프로세스 채용 및 목적생산을 서두르는데 그치고 있다.
셰일가스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프로필렌, 아로마틱 리치 프로세스를 채용하거나 정유기업들은 공정상 잉여 유분을 스팀 크래커에 투입할 수 있도록 신규설비를 도입했으며 범용수지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컴파운드, 메탈로센(Metallocene), 엘라스토머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메이저인 Mitsubishi Chemical(MCH)은 미이용 유분의 고부가화를 위해 촉매 및 반응기술을 개발하고 기능성 첨가제, 분산제 등 용도를 개발해 파일럿 설비를 가동하는 등 고도화하고 있다. 미이용 유분 150개를 테스트해 50개의 유효활용 반응을 확인하고 10개의 잠재고객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스프를 비롯한 유럽계 화학기업들은 단지별 유틸리티 공동사용 전략도 펼치고 있다. 바스프는 공동 터미널 사용으로 6억유로, 온사이트 설비 공동이용으로 1억유로 등 세계적으로 10억유로 이상을 절감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바스프는 다운스트림 강화정책을 펼침으로써 기초화학제품 매출비중을 25%로 줄이고 가능성 화학제품, 기능성 소재 및 솔루션 비중을 57%로 확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도 수평적 확장, 원가 절감이라는 수동적 전략을 넘어 스페셜티, 다운스트림 진출을 통한 수직 강화의 능동적 포트폴리오 확장을 통해 생존전략을 모색할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김은진 수석 연구원: ejkim@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