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크게 줄였다고 난리인 모양이다.
과학기술 기관·단체를 중심으로 기초 연구개발 예산을 줄이면 R&D의 기반이 무너져 국가 장래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으나, 실은 공짜로 나누어 먹던 예산이 줄어든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주머니돈이 쌈지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일부에서 중소기업들의 R&D 예산 나눠먹기와 국가 과학기술력의 근간으로 작용하는 기초과학 R&D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KAIST, UNIST, GIST, DG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기초과학학회협의체는 최근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감축에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4대 과학기술원과 국가 근간을 흔들고 있는 민노총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기술 노동조합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이상하지만, 국가 기초과학·기술을 개발한답시고 국민 혈세를 펑펑 쓴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5조원 감축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떠드는 것을 보면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다.
연구개발을 명분으로 예산을 배정받았으면 기초·응용 연구개발에 매진해도 부족한 판에 술 먹고 골프 치고 여행 다니는 것도 모자라 별의별 명목으로 예산 축내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백날 연구개발을 하고 특허를 내도 상업화와는 거리가 먼 쓸데없는 낭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던가.
과학기술 R&D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고, 과학기술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꼭 필요하지도 않은 낭비 예산을 감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술 관련 협회·조합을 중심으로 핵심 회원사들이 R&D 예산을 나눠먹기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고, 심지어 중복 지원이 어려워지면 자회사를 설립해 예산을 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산 배정을 미끼로 커미션을 챙긴다는 말도 들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1-2년이 아니라 10년, 20년 계속된 비리를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퇴직 후 밥그룻 노릇을 하는 단체이니 눈 감고 있을 뿐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공생관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평소 R&D 예산을 꿈의 예산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2024년도 예산 편성과정에서 과학기술 예산의 약 50%가 군소 기업에게 지원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후 대폭 감축을 지시했다는 것도 100% 타당한 것은 아니다. 나눠먹기식 운용과 함께 정부 산하 연구개발 단체의 비정상적 예산 배분과 집행도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고도 허울 좋은 개살구 같은 개발 성과에 그치는 과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민 혈세 낭비가 심각한 지경이다.
정부는 2024년 전체 R&D 예산을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2023년에 비해 16.6% 감액하고 인공지능(AI), 바이오를 중심으로 첨단산업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방침이라고 한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첨단산업 지원을 통해 상업화에 성공한다면, 연구개발 예산을 2018-2022년 연평균 10.9% 증액한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정부 예산은 국민의 혈세라는 점에서 낭비 요소를 철저히 걸러내야 하고 효율화한다면 500조원 이하로 30% 감축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