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천NCC의 자금난을 둘러싸고 한화그룹과 DL그룹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한화그룹과 DL그룹은 현물출자 형식으로 여천NCC를 합작 설립해 공동 운영하고 있으나 여천NCC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자 지원을 놓고 이견을 노출하고 있으며 서로를 비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한화가 현금 대여 형식으로 1500억원 지원을 승인한 반면 DL케미칼은 유상증자 형식으로 2000억원 지원을 결정한 것이 화근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금 대여와 유상증자는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이 현금을 대여하거나 유상증자를 택하면 그만이나 숨겨진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화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DL케미칼이 현금 지원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를 비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한화그룹은 2025년 초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벌인 결과 여천NCC에게 추징금 1006억원을 부과했고 962억원이 DL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DL은 대법원이 문제가 없다고 판결한 2007년 세무조사와 같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화는 2007년과 2025년 세무조사는 범위·판단 기준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화는 특수관계에 있는 주주 사이의 거래에서도 시장 원칙에 따라 거래가격을 계약하는 것이 상식이나 DL케미칼은 시장 원칙을 무시하고 원료를 저가에 공급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화 공급량이 많은 에틸렌에 대해서는 DL이 높은 가격 계약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DL이 많이 공급받는 C4, Raffinate-1은 할인 계약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에틸렌, 프로필렌을 비롯해 C4 등 원료 공급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춰 거래함으로써 여천NCC의 경영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한화 주장이고, DL은 다른 석유화학기업들처럼 원료를 저가에 공급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세법상 부당행위 계산이나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 형법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한화의 주장은 합작 상대를 무시한 과한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은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특히, 여천NCC의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감정싸움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상호 약점을 노출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화와 DL의 감정싸움이 한두 번에 그친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갈라서지 못할 바에는 상호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여천NCC의 경영상태로 볼 때 합작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뾰쪽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파격적인 조건이 아니면 인수 대상자를 찾기도 힘들고, 자금난을 방치해 부도를 내면 한화‧DL 모두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최근까지 계속한 무리한 신증설에 중국의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공급과잉의 늪에 빠져 있으며 대대적 구조조정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특히, 여천NCC는 당기순이익 적자가 2022년 3477억원, 2023년 2402억원, 2024년 2360억원으로 어마어마한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여천NCC가 최근 No.3 크래커 가동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도 2024년 12월 여수 2공장의 일부 가동을 중단하고 HD현대오일뱅크와 대산단지의 NCC 통합을 논의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 전체를 놓고 적정 생산능력을 산출한 후 잉여 생산능력을 감축해야 하나 적정 생산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어느 크래커를 먼저 폐쇄해야 할지 순서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난제가 수두룩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중심을 잡고 획기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하나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 컨설팅과 구조조정을 논의하고 있는 것 자체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화학저널 2025년 0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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