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칼럼]
“화학섬유로부터 배워라! ”

 한국 석유화학산업계가 2002년 들어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제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여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고 있다. 연일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던 기초유분 및 합성수지 국제가격이 봄철 성수기를 앞두고 20-40달러 뛰어 범용 합성수지 가격이 톤당 500달러를 넘어섰거나 넘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가격이 톤당 300달러 안팎에서 죽을 쑤고 있으니 500달러를 넘어 600달러에 근접한다면 Black Point도 멀지 않았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이다. 물론 한참 경기가 좋을 때의 800-900달러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500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1990년대 초반이나 중반에는 중동의 진출이 그리 많지 않았고, 동남아 석유화학기업들도 신생기업으로서 자국 수요에 맞추기도 빠듯해 중국수출에 적극 나서지 않아 한국기업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100-200달러 끌어올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나 오늘날에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중동과 동남아가 끼여들어 가격경쟁이 심해졌고, 중국도 가격이 오르면 구매를 기피하고 내리면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합성수지 가격 톤당 800-900달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면 도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합성수지 가격이 500-700달러 선에서 움직이는 것이 일상화될 것이고, 수급에 따라 400달러 선으로 떨어지거나 800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에 머물 것이 확실해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LDPE, LLDPE, PP, PVC, PS 생산원가를 톤당 500-700달러에 맞추어야 지 그렇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고 채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생산원가를 합성수지 가격 톤당 500-700달러에 맞추기 위해 경영계획을 다시 작성해야 하고, 거기에 맞춰 생산원가를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은 원료를 거의 수입 또는 외부구매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원가의 40-60%에 이르는 원재료 비용은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상태이고, 고정비를 조절할 수밖에 없어 인건비를 손대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왜 하필이면 인건비냐고 강력히 항의하는 것은 물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태세일 것이다. 그러나 석유화학기업의 인건비는 1980년대 말 또는 1990년대 초까지도 제조원가의 3% 안팎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은 8-10%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익성이 매출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에 인건비가 5-7%p 상승했다는 것은 석유화학기업들이 생존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판단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석유화학기업들의 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반면, 경영진의 안일한 판단과 노동조합의 몰염치한 강수로 인원을 전혀 감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단일 플랜트당 노동자수이다. 외국기업의 단일 플랜트당 노동자수가 10-20명이라면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은 아직도 30-80명 정도로 매우 많다. 급여수준은 큰 차이가 없는데 노동자수가 2-3배 많으니 인건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인건비 비중이 상승하면서 공무인력을 분사시켜 석유화학 단지별로 1개만 육성하는 등 인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으나 어느 석유화학기업 하나 실천하지 못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기업이라고 자처했던 SK(유공)나 여천NCC(대림산업)가 움직이지 않았고, 후발기업들도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하고 선발들의 흉내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요한 시사점은 효성이나 태광산업이 2001년 혹독한 노-사 분쟁을 겪으면서 홍역을 치렀지만 2002년 들어서면서 노동조합이 앞장서 노-사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1년 섬유산업의 사양화에 따라 수많은 노동자가 정리됐고, 수익성이 없는 플랜트의 중국이전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태에서 노-사 화합의 목소리가 터져 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효성 울산공장의 나일론사업부는 2001년 5월부터 약 1개월간에 걸친 노사분규로 약 860억원의 매출손실을, 태광산업도 2001년 6월부터 83일간 진행된 파업으로 4000억원의 매출감소를 겪은 후 나타난 현상이다.
 코스트를 줄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은 분명하고 다음은 경영진의 판단만 남아 있다.
 <화학저널 2002/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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