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조조의 대군을 맞아 화공전략을 펼침으로써 적을 섬멸한 사례는 유명한 군사전략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갈량이 목선에 볏짚을 씌워 조조의 대군이 머무르고 있던 강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 후 엄청난 양의 화살을 회수해 무기로 활용한 사례도 유명하다.
만약, 조조가 그냥 화살을 쏘지 않고 불화살을 쏘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갈량의 작전은 아마 실패했을 것이다. 화살을 회수하기는커녕 목선까지 불타 없어졌을 것이고 제갈량의 전술과 전략이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근 중동의 석유·화학기업들이 사용하는 M&A 전략은 제갈량의 전술을 뺨칠 정도이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토대로 석유에서 석유화학으로 확장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중국으로, 인디아로, 아세안으로, 그리고 한국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화학 메이저인 GE를 손에 넣은 것은 오래전 일이고 유럽에서도 거침없이 석유·화학기업을 인수하더니 최근에는 아시아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것은 오래됐고 타이 메이저와 손잡고 베트남 투자를 저울질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말레이의 RAPID 프로젝트에 참여해 정유는 물론 석유화학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에쓰오일이 무한 확장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오일뱅크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사우디 아람코가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가 된다는 사실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 있다. 현대중공업과의 협력관계로 보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현대중공업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91.13% 가운데 최대 19.90%를 1조80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환영해야 할지, 아니면 반대할지, 그것도 아니면 경계심을 가지라고 주의를 환기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일반 재무투자여서 경영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나 오히려 경영에 참여해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어떠할까? 현대오일뱅크가 2018년부터 추진해온 상장을 2020년 이후로 미루고 기업공개(IPO) 이전에 미리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프리 IPO 형태이지만 국내 정유기업들은 보통 신경 쓰이는 사태가 아닐 것이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지분 63.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현대오일뱅크까지 손아귀에 넣게 되면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영향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GS칼텍스를 인수했다면 국내 정유 시장이 통째 아람코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가슴이 조여올 정도이다.
아람코가 보유한 오일머니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에쓰오일을 토대로 GS칼텍스 인수를 시도하더니 어느새 현대오일뱅크를 곁눈질하고 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휘두르며 위압적 M&A를 추진하지 않고 서서히 잠식해오는 것으로 보아 제갈량도 놀랄만한 전략과 전술을 갖춘 아라비아 상술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대일로를 부르짖으며 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해가는 와중에 미국의 태클에 걸려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중국이 한술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면초가에 빠진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기업들은 어떠한 전략과 전술로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